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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Ministry Co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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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두가 힘든 시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기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경 시편 37편5절 말씀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삽시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에게 이루실 것을 바라보면서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기도하십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힘든 시기에 하나님께 맡기며 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에서 공적 예배에 대해서 기도하면서

결정이 되면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안에서 승리하세요.

2020년 3월 19일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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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실패자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리고 믿음생활에도서도 승리자가 되어야 만 행복 자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마음과 소망을 가지고

노예 생활하던 애굽의 삶을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하여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만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1세는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그중 많은 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엎드려져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엎드려짐을 당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의 삶을 광야 같은 삶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엎드려져 실패자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승리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한번쯤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승리자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민14:22-24

영광애굽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늘 불평하며 불순종의 길을 선택을 함으로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려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고,

거친 광야 같은 길을 걸어간다고 하드라도

끝까지 믿음 줄을 굳게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이 가라하신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만 좇아 살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승리자가 됩니다.

왕상8:56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삶을 살았다면

결코 광야에서 불행하게 엎드려짐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성경은 우리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순종하는 자로 보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늘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되어서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는 은혜로 사는 길을 성경은 말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실천에 옮기는 성도가 승리자가 도리수가 있습니다.

리 모두가 영원한 축복과 안식의 땅을 기업으로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승리자가 최후에 행복자이다.


우리 모두가 최후에 행복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0년 2월 4일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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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기도하여 존귀한자가 되자.


세상에 사는 사람이 다 똑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귀중한 존재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천한 존재로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서 없어서 안 될 존재의 삶을 살았으면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모두 똑같은 성도는 아닙니다.

어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아주 귀한 존귀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덜 존귀한 자가 있습니다.


역대상 4:9-10절 말씀에 보면 아베스가 나옵니다.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야베스)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란 사람의 이름의 뜻고통에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가 고통을 불러오다 는 뜻입니다.

   야베스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어 주었는데

   이름을 대개 아버지가 지어주는 전통에 비추어 보면


   야베스는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이 분명합니다.

   아마 야베스는 불행한 가운데서도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역전의 삶을 산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올 한해에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서 모두가 존귀한 존재로 살았으면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귀한  존귀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뉴욕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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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마지막을 보내면서 감사


2018년도 보내고

2019년 새해를 시작한지가 어그제 같이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가고 지난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그 많은 시간들은 옛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나간 1년은 목회자인 나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감사도 많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2019년 3월 3일에 권진안 선교사님께서

서울 대림지역에서 중국 한족을 위한 한족교회 개척에 협력하며 동참여한 일입니다.


2019년 3월 3일에 삼삼하게 한족 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족 교회 개척 예배에 100명 넘는 인원이 참석하고(한국사람)하고

한족은 딱 2사람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한족 교회가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권진안 선교사님께서 헌신의 결과로 A국 한족들을 18명 넘는 사람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얼마가지 않고

그 사람들이 직장 따라 일터 따라 각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저에게 목사님 선교사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 사역을 하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들어 하루도 살수 없는 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개척이 쉽지 않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지난 12월 2일 - 13일까지 한족 교회 방문하였습니다.

방문하였을 당시에 권선교사님께서 마음이 무척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희 한신교회 성도들이 정성어린 선교헌금을 전달해 주어였습니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시간된 것입니다.


그 뒤에 감사의 소식과 성탄을 즐거운 보내면서

교회 교안들과 손수 만두를 만들고 예배 후에 만 두국을 교회에서 먹고

교제하는 모습과 시진을 보내주어 보게 되었고

목사님 덕분에 성탄을 잘 보내게 된 것을 감사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지나간 힘들었던 시간이 돌리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지게 순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19년도 A국 목회자 신학교 교육 사역이 3월과 9월에 두 차례 있었습니다.


우리 한신 교회와 성도들이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은혜를 입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지만 위대한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복을 받은 것을 생각해 보니 행복한 한해 었습니다.


앞으로 2020년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 사역에 참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지나간 마음의 힘든 시간을 감사로 바꾸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9년 12월 마지막을 보내면서  감사..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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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단을 잘하면 행복하다.


   미국에 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케네디 대통령 (1917년 5월 29일~1963년 11월 22일)

   자문을 듣기 위해서 전임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찾아 갔습니다.


   아이젠하워 전임 대통령은

   젊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임무는 결단하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결단을 잘하면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삽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결단을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국민이 죽고 힘이 듭니다.

   사람은 순간순간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옳은 판단을 하며 살아가야 행복한 삶입니다.

   언제나 남보다 한 발 앞서서 결단을 해야 기회를 잘 잡을 수가 있습니다.

   좋은 선택을 하고, 속히 결단할 때에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결단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기회를 만들어 남보다 앞서서 성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삶영적인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잘 결단하여 승리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면서 어떤 결단을 해야 행복합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명예, 권세, 물질과 부요 향락 그리고 우상에 사로 잡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1)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에 결단입니다.

       요14:1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받는 길, 사는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결단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식구조를 가지고 살겠다는 결단의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로 결단을 해야 행복합니다.


    늘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결단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고.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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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답게 살면 행복하다.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식구들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한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목구비를 갖추고 모양은 사람이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 일어나고 슬픔과 아픔이 생기게 됩니다.


   남편은 남편답게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렇게 살 때에 아내에게도 행복을 주고,

   자녀들에게도 기쁨을 주며,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답게 사는 사람이 좋은 겁니다. 

   답게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답게 사는데 누가 욕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도 사람 답게 살면 행복한 것입니다.


   교회라고 모두가 같은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있는가 하면 전혀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답지 못하면 교회가 욕을 먹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부지런히 살펴서 주님께서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않게 삶을 살면 욕을 먹게 됩니다.


   목회자도 목회자답게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지탄을 받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담당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살펴서 주님께 책망을 듣지 안 토록 조심하며 살아야합니다.


  주님은 토하여 내실 수밖에 없는 교회에게도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신교회의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진지하고 심각한 성찰을 통해 갱신하도록 힘써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잡지 않으면 기회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새로운 기회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점검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힘쓰고 애쓰는 2018년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8년 1월 31일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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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18.1. 7. 신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뉴욕한신교회 창립 32주년의 감사 예배 명예. 원로 장로 추대와 은퇴.

두 분의 권사 임직 예배를 드리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신교회의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더욱 은혜와 인도하심과 지키심을 느끼게 됩니다.


1986년 초에 제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기내에서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 가정이 미국에 잘 정착하게 해 주신다면 그리고

미국에 살 수 있게 영주권을 허락해주신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교회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3개월 만에 미국에 살 수 있는 영주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1986. 10. 01. 장길준 목사 사택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의 첫발 출발하였습니다. 그 후에

1987. 07. 05. 130 S Valley Stream NY 으로 교회를 이전하여

미국 장로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1989. 09. 10. 35-32 Union ST Flushing NY 으로 교회를 이전하여.

1990. 10. 01. 206 ST Bronx NY 루터란 교회에 이전하여 1시에 주일 예배를 드리며

락클랜드 지역에 계시는 김동화. 김명선 집사님을 만나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1994. 08. 28. 945 RT New City NY 미국 교회인 락클랜드 침례교회로 이전하여

성장과 안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2003. 10월에 현 교회 건물이 60년된 술집을 매입을 하었습니다.

오래된 술집이 교회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술집이 교회로 변화되듯  모인 심령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 교회당 건물을 구입 수리 및 보수하여 타운에 교회로 허락을 받았고.

2004년 12월 교회 분규로 인해서

2015년 초에 교회가 어린아이까지 모두 24명 남고 교인들이 흩어져서

교회 운영. 모게지 상환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2008년 3월에는 담임 목사인 제가 신장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암 수술 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부족한 종의 건강을 지켜 주서서 지금까지 은혜로 살게 해셨습니다.


2017년 8월에 모기지 상환을 완불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드리며,

그 동안 헌신과 봉사로 교회를 섬기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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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란?

'아무 말도 없이 잠잠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27:11-14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 없이 심문을 받으려고 빌라도 법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저가 당연히 죽을죄를 지었다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일에 있어서 침묵 밖에 없었습니다.

사53:7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어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합니다.

예수님의 침묵 속에서 우리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입을 열지 않고 십자가의 길로 걸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침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 높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명자의 길을 가는 자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합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가져올 사랑을 알았기에 말이 없습니다.

   사랑은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자원한 길이기에

   죄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고난에도 침묵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지옥형벌을 한 몸에 지녔기에 침묵하신 것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셨기 때문에 아무 말이 필요치 않았고 침묵하셨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에게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말하고 있을 뿐 입니다.

   침묵은 참으심의 표현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예수님은 말없이 오래참고 침묵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은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입니다.

    사53:11

    그가 자기 영혼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민족이 이길 것이라는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나아가셨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시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망 중에 미래를 바라보며 참으시며 침묵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우리에게 힘들고 여러운 환경에 처해도 예수님의 침묵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식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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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려워하며 늘 불안 가운데 살아갑니다.

늘 먹고 사는 의식주의 문제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두려움을 주기도합니다.

또 갑자기 찾아와 힘들게 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참으로 두려워 할 것은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며 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대상자이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눅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하나님은 영 육간에 가장 무서운 분입니다.

영과 육을 죽이시는 권세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 때에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창19:14에 보면

이 나가서 그 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성과 같이 망한 것입니다.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100여 년 이상 방주를 만들고 동물들과 자신들의 가족들을 태워서 백오십일간홍수에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신 말씀을 무시하던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날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주의 날을 기억하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을 귀중히 여기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귀중히 여기며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과 우리의 것을 확실히 구분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드릴 때에 복을 받습니다.

성도들은 교회(성전)를 귀하게 여기며

성도들을 귀하게 여기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것 귀하게 여기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거룩하게 다루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주의 종을 귀하게 여기며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일군으로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품꾼으로 생각해서 안 됩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귀하게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청년 때도 교사의 직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로서 대통령이 되어도 교사, 집사의 직분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신 사명을 감당한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 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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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는 70억 이상의 많은 사람을 두 분류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 그리고 죄와 마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첫 번째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늘 함께하는 사람은 +(플러스) 형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축복을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비록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는 +(플러스) 형의 축복을 받는 자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죄와 마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죄와 마귀가 함께 사는 사람은 - (마이너스) 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말 가운데 사람이 앞으로 넘어져도 뒤가 깨지고

사람이 뒤로 넘어져도 앞에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본인 만 - (마이너스 ) 형의 삶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죄악에 빠져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을 살 때에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에 2017년 한해를 + (플러스형)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요셉이 바로 형통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1.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사랑하시고 언제나 돌보아 주십니다.

   많은 성도들은 믿음을 얻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그 사람의 신앙심을 측량할 수 있는 척도인 것입니다.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여 주십니다.


2.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돌보와 주십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피해 가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외면하십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이 못 견디게 비참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현실에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어려운 현실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올 한해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으로 살아갑시다.


3.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부정을 멀리하는 사람을 돌보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에 좋은 것을 넘치도록 담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날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는 삶을 살아갑시다.


4.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큰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적당히 일을 처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우리의 믿음을 세상과 타협하며 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당히 사는 사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치열한 경쟁 시대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히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새해에 삶을 출발하면서 적당히 섬기고

   적당히 믿는 미지근한 삶을 팽개쳐 버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을 살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5. 화목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화평케 하고 화목하게 하는 사람,

   무슨 일에나 덕을 세우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요셉은 형님들과 화목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화목하는 일에 앞장 선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회복과 더불어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새해에도 + 플러스형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의 생애는 아름답고 복되며 부족함이 없는 생애입니다.

비록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을지라도

여호와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즐거워한다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2017년 한해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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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2016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감격한 마음을 가지고 한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금년도 마지막 12월 31일 보내면서

송년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의 인생의 남은 날도 쉬 지나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한해가 그러했듯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의 정점에 서게 되면,

우리의 날들도 살같이 빨리 지나갔다는 것을 발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는“사람답게”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사람답게”살아가는 삶을 네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용서하는 삶

골3:13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하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하면서 사는 것은,

내게 손해를 끼친 사람, 얄미운 사람,

큰 잘못을 범한 사람을 용서하면서 산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의 마음을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우리도 사랑하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남은 날을 사랑하며,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는 삶

골3: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사람은 가정에도 국가에도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 어디에도 진정한 평화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가정과 삶을, 교회와 사회를 지배하라고 말씀합니다.

남은 날을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주장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

골3;13절

“누가 뉘게 협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남을 용서하는 삶, 그리스도의 평강이 지배하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하는 삶을 통해서 완성하게 됩니다.

예배의 삶은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은 시대가 바뀌어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생활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고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사람과 같습니다.

삶 전체가 예배하는 모습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

골3: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주어진 환경에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으면

도무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구속받은 성도가 된 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바로 풍성한 삶인 것입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허락하시는 새해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요?

새해에는 나의 삶 속에서 잘못된 모습들,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들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고 사랑 받는 사람들답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날들이 얼마쯤일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 동안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로 작정하고 계획을 세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새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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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이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는 여러분과 가정과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까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순간에는

  물에서 구원해주는 사람이 왔을 때가 가장 기쁜 순간니다.

  암으로 죽는다는 사망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는

  암으로 인해 죽어가는 자신을 고쳐 줄 의사를 만나는 순간이 가장 기쁜 순간니다.

  사람이 배고플 때에는

  먹을 것을 가지고 온다는 소식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까요?

  그 이유는 바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고 추한 짐승이 우거하는 외양간에 말구유에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의 날이 된 것이고,

   죄에서 해방시켜 줄 구원자가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성탄절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천국 소식을 가지고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사랑과 용서를 가지고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오늘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수많은 찬송 가운데 오셨습니다.

     성도들에게 항상 찬송하며 살아가라고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기도하는 자 중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가라고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예언의 말씀하신 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성탄은 영광중에 오신 날입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늘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었습니다.


5)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성탄절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성탄이라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셨습니다.

     성탄절,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꼭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가정과 생애가 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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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면서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해주는 것의 차이를 우리는 종종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요즘 같은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옳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이 다 옮은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말해주는 것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의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모든 것에서 본인이 말하는 것이 다 옳고, 정확하고,

  본인의 말만 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만약 본인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면 상대방을 향해 화를 내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삶의 대한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삶으로 인해

  결국 상대방에 대한 아량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세삼 느껴봅니다.


  지난 11월 20일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0시 50분 대한항공편으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전철과 기차표를 구입하면서 “표 한 장 주세요.” 했었습니다.

  표를 파는 사람이 저를 보더니 경로 우대 표를 주었습니다.

  경로 우대 표를 주는 것을 보면서

  문득 ‘아, 세월은 속일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경로 우대 표를 받을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었는데

  세월의 흐름은 막지 못했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이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더 정확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라고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나 자신을 한 번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우리는 자신을 옳다고 여기면서 본인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는지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면서

  서로를 사랑하며, 존중하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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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삶을 살다보면 염려와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힘든 위기의 순간을 당해서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염려와 걱정과 근심은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대면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힘든 위기를 당할 때에 우리는 염려하면서 살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 하며 살 것인가? 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일은 자기 자신의 삶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건강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것이 모든 근심과 염려에서 해방을 받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2: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기도는 우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 없이 구하는 것은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눅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염려를 하면 두통을 일으킵니다.

고혈압을 발생하게 됩니다.

근육통 및 설사 구토, 발한, 흥분,

기억력 저하, 불면, 강박감, 충동적인 것을 불러옵니다.

염려와 걱정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기 않기를 원해야 합니다.


저는 약 25년 전에 식중독으로 인해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2주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호흡이 힘드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아무것도 생각과 염려가 없고

오직 호흡을 자유스럽게 하는 것 밖에 소원이 없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염려와 같이 사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염려의 순간에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건강의 비결이며

모든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여유 있게 받아 넘어가는 삶도 필요합니다.

웃고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강한 삶입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라"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해주신 것을 생각하며

긍정적 생각을 하며 감사를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조절 할 수 가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맡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 염려의 순간에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염려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2015.12.26 20:48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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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5년에 미국에 도착하여 이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성탄절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즐겁게 경배하며 축하하는 분위기가

어디에 가든지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해가 거듭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Happy Holiday이라는 말로 바꾸어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해피 할라데이로 바꾸어진 것은 통탄해야 할 일들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살면 안 되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이라는 단어와 ‘그리스도’라는 말과 함께 ‘경배’가 합쳐진 합성어인 것입니다.


즉 즐겁게 그리스도를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리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만 경배를 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 분입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가 경배의 대상인 것입니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알고 그리스도께만 경배를 해야 합니다.


즐겁게 그리스도를 경배가 없는 성탄절을 보낸다면

성탄의 진정한 그 핵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성도들은 성탄절에 누가 경배의 대상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고, 헛된 성탄절을 보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며 온 세상이 즐겁게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성탄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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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보는 기능을 하는 감각 기관”을 눈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첫째로 육신의 눈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눈입니다.


눈이 밝지 아니하고, 침침하면 삶이 매우 힘들고 피곤합니다.

눈이 밝으면 사물을 밝게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이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가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에게는 영의 눈이 있습니다.

실제로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아니한 내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영의 눈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눈과 영의 눈이 꼭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아 왔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은 수많은 외침과 수난 속에서도

그들이 잘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 때문있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차서 주님이 오시는 던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영적인 눈이 어두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줄 거의 모두가 잊고 있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유대와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처럼

오늘도 여전히 주님을 영접치 못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성탄에도

소수의 사람은 놀랍게도 오시는 주님을 알고 기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엘리사벳은 몸에 아기를 수태한 마리아를 보고

즉각 태중에 있는 예수님의 방문을 알아보았습니다.


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몇 주가 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엘리사벳은 주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마리아를 축복하고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기뻐한 것입니다.


영적인(믿음의) 눈을 가질 때에 주님을 맞이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번 성탄에 믿음의 눈을 가진 성도가 되어서

주님을 진정으로 축하는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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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최초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인간은 수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얼굴에 흠을 가리기 위해서 화장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사람은 옷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가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계,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예뻐지려고 노력하며 치장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진가를 높이기 위해서

학력도 높이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 명품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다고 진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삶을 통해서 진가를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삶이 평안할 때에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바르게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잘못된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그 사람의 진가를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의 이민 초기에 우드사이드 지역에서 남자들만 6명이 아파트를 얻어서

룸메이트를 두고 같이 공동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렌트비도 서로 나누어 내고, 식사 생활하는 것과

모든 공과금도 서로 나누어 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헤어드라이어가 과열되어서 아파트에 화재가 났습니다.

소방관들이 출동하여 불이 진화 되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하니 같은 룸메이트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화재 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

그 때에 다시 집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났을 어디에 갔다가 이제 왔느냐고 말하니


신분이 없어서 이민국에 잡혀 갈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피했다가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룸메이트도 평상시에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인정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자기만 살자고 도망을 갔다가

다시 평안해지니 돌아오는 룸메이트를 생각하면서

사람은 평안할 때에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누가 진짜인가 아니면

누가 가짜인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웃과 관계 속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도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가정에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삶을 통해서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이 필요합니다.

신앙인들도 평안할 때에는 진짜와 가짜 신앙을 쉽게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삶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의 믿음이 올바른지 아니면 잘못된 믿음인지 구분하기 쉽습니다.


성경에서 욥은 고난과 환난 중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갑절이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의 생애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고난 중에서 인내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진실한 삶으로

끝가지 견디는 자가 되어서

최후에 진가를 발휘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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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목이 마를 때도, 고기가 먹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불편으로 인해 큰 은혜를 잊으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불평과 원망의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축복의 때가 늦어지고

그 결과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40년이라는 광야생활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었던 자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

명하였습니다. 그 후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려 왔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때에

더 큰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삶에서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살전 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누가 봐도 감사할 것에 감사하는 것은 성도의 감사가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진정한 감사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해도

우리의 건강이 좋지 않아도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활환경이 좀 불편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은 공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사람이 “원망과 불평의 기차를 타고 달리면”

스치고 만나는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권태롭고 불만스러워집니다.

결국 후회와 파멸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감사의 기차를 타고 달리면”

만나고 스치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즐겁고, 만족스럽고, 결국에는 행복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불평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그러므로 불평과 감사는 공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불평 가운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적어도 자기 자신은 그렇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감사란 그런 것입니다.

조건에 따라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한 분 만으로 이미 나는 만족하고 감사할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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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면 계절에 따라 나무의 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겨울에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나무와 가지만 보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이 되면

봄에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가지에 움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움이 자라서

나무 잎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며 점점 커져 가면서

앙상한 나무의 모습이 변하여서

균형이 잡혀 진 나무의 모습으로 바꾸어집니다.


봄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꾸어지면 나무는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어야 합니다.


지난여름에 우리 집에 있는 향나무가 뜨거움과 가뭄에 견디지 못해서

10그릇의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지 못하면 나무가 말라 죽고 맙니다.


나무가 죽으면 나무로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의 잎의 모습이 파란 색으로 바꾸어집니다.

살아있는 나무 밑에 들어가면 나무가 태양을 가리 워 줍니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나무가 인간들이 배출한 일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나무는 우리 인간들에게 필요한 산소를 내놓습니다.


사람에게 없어서 안 될 꼭 필요한 것을 우리 인간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나무은 인간에게 없어서 안 될 소중한 자연의 하나입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같이

이웃과 세상에 유익을 주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패괴하면서 삶을 살아간 다면

얼마 가지 않아서 세상은 힘든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 갈 때에 행복자입니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로 계절이 바꾸어집니다.


가을에 나무들의 모습이 변합니다.

나무 잎의 색갈이 조금씩 변화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색깔이 변화되어 사람들이 좋아 하는 단풍잎이 됩니다.


나무가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하는 단풍이 들면

사람들은 나무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않고

단풍 구경를 갑니다.

사진 촬영도하고, 비데오 촬영을 합니다.


아 진짜 아름답다고 말하며 감탄사를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주는 나무의 단풍은 실제로 나무로서 슬픈 사건입니다.

마지막 나무로서 최후의 발악하는 것이

나무의 단풍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아름다운 단풍도 시간이 지나면 잠간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하나씩, 둘씩 아름다운 단풍잎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11월 첫 주에 산에 올라가보니 얼마 전 만해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감탄을 했던 나무의 단풍은 거의 다 떨어져서

나무 잎은 땅에 쌓여 있는 위를 걸어가다 보니


사람에게 좋은 산소를 제공해 주던 나무 잎을 밝고 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추운 겨울철이 올 것입니다.

나무는 다시 앙상한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서

나무가 추운 겨울철에 추위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나무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죽으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제공을 해주지 못합니다.


사람은 나무와 같은 인생임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면서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는 부모님의 은혜로 성장하며 성장기를 지납니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 결혼 하여 가정 및 자녀를 낳고 살다가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릅니다.


나무와 같이 잎이 떨어지며 추운 겨울철에 잘 견디지 못하면

나무가 얼어 죽는 것 같이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 잘 견디어야 합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이기지 못하고 지게 되면 죽게 됩니다.


살아남지 않으면 남에게 좋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나무와 같이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의 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세상에 유익을 주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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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나름대로 무척 바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꼭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지난 하루였습니다.


공교롭게 하루의 일과가 밤 11시 40분에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늦게나마 시작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2015년 10월 30일이 지나가는데 단 몇 분밖에 남지 않습니다.

결국 목표를 세워 놓고 하려고 하는 일을 마치지 못한 하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기의 삶으로 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에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지낸다면

후회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 갈 때에

인생은 성공과 행복의 삶으로 이어져 갑니다.

그렇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산다면 실패의 삶이 되고 맙니다.


마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성경에서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주인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먼 나라에 떠났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면서 다른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각자가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충실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가 받는 것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였습니다.


자기의 능력에 따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들에게 주인은 똑같이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마28: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25: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주인에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준 주인의 의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고 그 재능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 와서 결산을 할 때에

주인에게 받는 그대로 주인에 주어질 때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원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는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무가치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낭비를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받은 것들 시간, 지위, 권한이나

소유물 등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착각을 하였습니다.


자기는 주인의 맡겨 준 청지기란 사실을 모르고 산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인이 원하는 소중한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하루하루 하나님의 청지기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는 자와 같이

자기의 삶에 이익을 남기며 살 때에 진정으로 행복한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잘했다고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충실하게 사는 자가 행복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며

잘 했다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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