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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Ministry Co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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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18.1. 7. 신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뉴욕한신교회 창립 32주년의 감사 예배 명예. 원로 장로 추대와 은퇴.

두 분의 권사 임직 예배를 드리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신교회의 지나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더욱 은혜와 인도하심과 지키심을 느끼게 됩니다.


1986년 초에 제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 기내에서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 가정이 미국에 잘 정착하게 해 주신다면 그리고

미국에 살 수 있게 영주권을 허락해주신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교회로 만들겠다는 서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3개월 만에 미국에 살 수 있는 영주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1986. 10. 01. 장길준 목사 사택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교회의 첫발 출발하였습니다. 그 후에

1987. 07. 05. 130 S Valley Stream NY 으로 교회를 이전하여

미국 장로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1989. 09. 10. 35-32 Union ST Flushing NY 으로 교회를 이전하여.

1990. 10. 01. 206 ST Bronx NY 루터란 교회에 이전하여 1시에 주일 예배를 드리며

락클랜드 지역에 계시는 김동화. 김명선 집사님을 만나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1994. 08. 28. 945 RT New City NY 미국 교회인 락클랜드 침례교회로 이전하여

성장과 안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2003. 10월에 현 교회 건물이 60년된 술집을 매입을 하었습니다.

오래된 술집이 교회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술집이 교회로 변화되듯  모인 심령들이 새롭게 변화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 교회당 건물을 구입 수리 및 보수하여 타운에 교회로 허락을 받았고.

2004년 12월 교회 분규로 인해서

2015년 초에 교회가 어린아이까지 모두 24명 남고 교인들이 흩어져서

교회 운영. 모게지 상환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2008년 3월에는 담임 목사인 제가 신장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암 수술 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부족한 종의 건강을 지켜 주서서 지금까지 은혜로 살게 해셨습니다.


2017년 8월에 모기지 상환을 완불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드리며,

그 동안 헌신과 봉사로 교회를 섬기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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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한신 교회 성도 여러분 저 장길준 목사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계가 힘든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과 경제적인 고통 가운데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까지 오게 된 것

정말 하나님께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힘든 시기를 잘 견디시고 승리하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월 15일 주일 예배를 교회에서 드린 후에 이번 주가 10주째를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뉴욕주지사님께서 행정 명령으로 교회 10명 미만 집회는 허락이 되어서

내일 5월 24일 주일 예배부터 개인 거리 간격을 유지하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은 성도님들의 얼굴을 뵙기를 원합니다.

만약 몸이 불편하시거나 기저 질환을 가지고 계신 성도님들은

현재와 같이 카카오톡 라이브챗으로 예배에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루 속히 편안하게 삶과 생활 그리고

예배를 자유롭게 드리기를 소망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2020년 5월 23일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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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선물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결혼 등등

어떤 축하하고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주고 받는 선물이 있습니다.


지난 4월 11일 버지니아 사는 둘째 아들 집의 둘째 손자인 장시원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 날 버지니아 Monroe Park 공원에서 손자 친구들을 초청하여

생일잔치를 하는 곳에 참석을 하기 위해

급하게 아침 7시에 뉴저지에서 차로 출발하여 5시간 만에 도착하였습니다.


손자 장시원의 생일 축하를 하는 자리에서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르고, 점심도 먹고

손자 친구들이 부모가 준비한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손자의 생일 축하 자리에 참석은 했지만 계획에 없던 일정으로 급하게 온 터라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참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손자와 손녀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갑자기 아침에 오다보니

너희들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손녀인 장아린이 하는 말이 “선물은 중요하지 않고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이렇게 와주신 것이 최고 선물이에요.” 라며

저희부부를 붙잡고 꼭 안아 주는 손녀와 손자를 보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손녀의 그 말을 듣는 순간에 그곳 까지 5시간 동안 운전하며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5시간을 운전하여 돌아오는 시간에도 참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선물하면 돈의 가치에 따라 소중함과 가치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사람이 방문해 주는 것, 찾아 주는 것은

돈의 가치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써 우리를 위해 갖은 고난을 모두 담당해 주시고

죽으심과 무덤에 묻히시는 것,

그리고 다시 부활해 주신 것이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것이

성도의 올바른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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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감사의 조건을 생각을 해보면

감사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주는 병문안으로 매우 바쁜 한 주간이었습니다.

저의 큰 누나의 딸인 조카가 지난 주 토요일(7.4.2015)에

뇌출혈로 후러싱 병원을 거처 롱아일랜드 NORTH SHORE LLJ 병원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의식이 없는 채로 입원된 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마음으로 힘든 시간이요, 인간의 나약함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자체가 기적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도 감사의 조건인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봐도 감사할 조건들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감사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를 할 줄 아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살게 해주시고

나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생각 없이 살지 말고

나에게 하루를 살게 생명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루를 살면서 밥 세 끼를 먹고 산다는 것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을 바라보니 의식도 없고, 먹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 볼 때에


사람이 움직이고, 먹을 것을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감사의 조건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일용한 양식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삽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먹는 것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먹고 소화를 시켜서 배설물은 밖으로 배출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며 감사할 조건입니다.


사람이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탈이 나고, 병이 들어 죽게 됩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싸게 하옵소서” 하며 기도합시다.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싸면

그 다음에는 잠을 잘 자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은 쉬어야 합니다.


창2:1-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안식하도록 명령하셨고,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잠을 잘 자야 피로가 풀리며, 힘이 생깁니다.

우리의 건강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가장 기본적이지만 당연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숨을 쉬고,  잘 먹고,  잘 싸고,  잠도 잘 자는 평범한 일에 감사하면서 살아갑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축복인 것입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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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란?

'아무 말도 없이 잠잠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27:11-14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 없이 심문을 받으려고 빌라도 법정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저가 당연히 죽을죄를 지었다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는 일에 있어서 침묵 밖에 없었습니다.

사53:7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어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합니다.

예수님의 침묵 속에서 우리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입을 열지 않고 십자가의 길로 걸으셨습니까?

    예수님의 침묵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 높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명자의 길을 가는 자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강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합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가져올 사랑을 알았기에 말이 없습니다.

   사랑은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자원한 길이기에

   죄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고난에도 침묵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지옥형벌을 한 몸에 지녔기에 침묵하신 것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셨기 때문에 아무 말이 필요치 않았고 침묵하셨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에게는 말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말하고 있을 뿐 입니다.

   침묵은 참으심의 표현입니다.

   인류를 사랑하는 예수님은 말없이 오래참고 침묵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침묵이 주는 교훈은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입니다.

    사53:11

    그가 자기 영혼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민족이 이길 것이라는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승리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나아가셨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예수님께서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며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묵하시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소망 중에 미래를 바라보며 참으시며 침묵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우리에게 힘들고 여러운 환경에 처해도 예수님의 침묵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식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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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답게 살면 행복하다.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식구들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한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목구비를 갖추고 모양은 사람이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 일어나고 슬픔과 아픔이 생기게 됩니다.


   남편은 남편답게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렇게 살 때에 아내에게도 행복을 주고,

   자녀들에게도 기쁨을 주며,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답게 사는 사람이 좋은 겁니다. 

   답게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좋아합니다.

   답게 사는데 누가 욕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도 사람 답게 살면 행복한 것입니다.


   교회라고 모두가 같은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있는가 하면 전혀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있습니다.

   만약에 교회답지 못하면 교회가 욕을 먹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부지런히 살펴서 주님께서 기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가 성도답지 않게 삶을 살면 욕을 먹게 됩니다.


   목회자도 목회자답게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지탄을 받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담당하면서

   사람답게 살아야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살펴서 주님께 책망을 듣지 안 토록 조심하며 살아야합니다.


  주님은 토하여 내실 수밖에 없는 교회에게도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신교회의 실상은 과연 어떠한가?

  진지하고 심각한 성찰을 통해 갱신하도록 힘써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잡지 않으면 기회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새로운 기회란 쉽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점검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힘쓰고 애쓰는 2018년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8년 1월 31일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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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면서, 주일 지키고, 십일조 생활을 하며, 봉사 생활을 하며,

성경을 읽으며, 기도 생활을 하며, 양심대로 살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는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그와 같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산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 안에서 사는 자를 말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살 때에 참으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외적인 모양만 갖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변화 된 자가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고전1: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회당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대표하여 바울을 총독 갈리오에게 고소했던 사람입니다.

  

바울과 소스데네가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회당장인 소스데네를 주 안에서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원수 되었던 사람이 주 안에서 형제가 된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면서 형제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서로를 세워 주며 사는 자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우리 개인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개인의 교만이나 자랑의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우리 보다 못한 이웃, 불쌍한 사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유익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과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 세워주며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돼지에게 양의 가죽을 입혔다고 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양의 가죽을 입었어도 본질은 돼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나는 참으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변화된 그리스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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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을 자기가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수요일 오후 5시에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기 전에

냄비에 된장국이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가스 불이 켜져 있는 채

불을 끄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가스 불을 끄지 않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수요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밤 11시 경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에 집에서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문을 열고 부엌에 가보니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은 채로 집을 나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집에 불이 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스 불은 6시간 정도 세게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냄비는 시커멓게 타 버렸고

가스레인지 부근은 뜨거워서 근처에 가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집 안에는 연기가 탄 냄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부엌 마루까지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올랐습니다.

아마도 집에 불이 나기 직전에 집에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만약 알람이 울려서 911 신고가 되었다면

집에 문이 잠기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거나

소방관들이 와서 난리가 나고 재산 피해가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 집과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적당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게 하신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나는 위기를 모면케 해주신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해주심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3:26-28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서

사자의 밥이 될 뻔 했던 다니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풀무불 속에서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사자 굴과 풀무불 같은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성도들을 지켜 주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을 받는 행복한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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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모여 사는 집 보다는   가정의 식구들이 정신과 생활이 하나가 될 때에 가정이 행복합니다.

      영어의 홈(home)이란?

      경건한 청교도들의 후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의 신앙을 발전시킨다"는

      생활 신앙으로부터 시작된 말입니다.


       페스탈로치는 "그리스도교의 특산물은 국가가 아니라 가정이다

       오늘 문명 세계에 있어서 홈(home)이라고 일컫는 것은

       특히 그리스도교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가정의 달이 되기 위해서는


   1.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내 가정을 제단으로 삼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 예배는 가정 화평의 원천이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온 가족이 제단 앞에 엎드려

       예배하는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2. 우리의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는 장소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과 화평이 가득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무언의 신앙 교육의 장의 분위기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가족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감화시키는 일은 먼저 믿는 가족의 책임입니다.

       빌립보의 루디아는 자기 집을 전도하는 장소로 제공하여

       그 집안이 다 침례를 받고 빌립보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행16:14-15).

       가정은 교육과 전도의 두 가지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정을 전도 장소로 제공 되는 것은 특별 축복입니다.

       초대 교회의 집회는 개인 집에서 시작되었으나(행12:12),

        빌립보에는 루디아의 집(행16:40),

        에베소에는 아굴라의 집(고전16:16), 라오디게아에는 눔바의 집(골4:15)이

        전도 장소로 제공되었습니다.


    3. 우리의 가정을 화평의 장소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의 제물이 되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나누어진

        장벽을 헐어 버리고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한 가정의 화평을 이룩하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4. 우리의 가정을 행복한 분위기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먹고 사는 자입니다.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정 식구들에게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이웃의 불쌍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사랑을 하며 행복한 가정이 되어서 살맛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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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로 헌신 한지 15년이 지나고 있다.

13억중의 하나처럼 살기로 결심하고 들어왔으나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이들이 말하길 돈 많은 한국인이 왜 자전거를 타는가?

택시를 타지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렇듯 나도 미국인은 돈이 많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택시 타고 다니는 미국 선교사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놓고 사는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 돈이 많은 것이 아니듯,

미국에서 온 선교사도 그렇다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약 2년전 갑작스런 상황으로 이곳을 떠나 태국에서 사역을 하였는데,

고산지대에 사는 화교를 찾아다니며 선교를 할 때이다.

사륜구동 차량이 절대 적으로 필요해 기도하던 중

장목사님의 지원을 받아 차량을 구입하였고 사역의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차량을 받았을 때만 해도

미국교회는 돈이 많아 그 정도는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액수의 돈이라 생각했었다.

그렇치만 그 일이 있은 몇 달 후 장 목사님을 만나 차량 헌금 얘기를 나누던 중,

그 헌금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그리고 가볍게 만들어진 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죽을 팔고, 귀고리와 돌 반지를 팔아, 모아진 눈물어린 돈이며,

김치를 만들어 팔아 푼푼의 돈이 모아져 건네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 한가지 가슴이 메이는 얘기를 들었다.

선교사를 돕기 위해 잘 아는 집사를 찾아가 부탁을 드렸더니

“고유가 때문에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하면서 50달러만을 내 놓더란다.

적어도 몇 천 달러를 기대하며 어렵게 말을 건넸건만

겨우 50달러를 주면서 거기에 한 마디 덧붙여

우리도 살기 힘들다 하는 그 말에 그만 목사의 얼굴이 화끈 거리고,

자존심까지 상한다,


받을 수도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어 고민하다

안 받으면 시험 들까봐 받아 들고 나오는데 속이 너무도 상해 눈물이 핑 돌더란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하는 대로 하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선교 바자회를 하여 모우고, 헌 옷 수집하여 팔아 모으고,

아픈 다리 끌고 다니면서 광고지를 돌려 모아진 후원금인 것을 내가 왜 몰랐던가?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지금 교회도 어려움 중에서 힘껏 선교헌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끼고 또 아껴서 과부의 엽전 두 냥 같은 그들의 모든 것인 그것을 드리는 것이다.

생명과도 같은 후원금인 것을 결코 잊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선교 후원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회개하며 감사드린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모아 구령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태국 권 선교사 고백및 감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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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가을 같다가도,

한 낮이면 무섭게 여름으로 돌아가고,

하루에 한 두번은 변함없이 먹구름이 몰려와 쏘낙비 되어 내리고,

이렇게 우기를 보내다 보니,, 곧 두 달이 되어갑니다.


그간 안녕 하신지요?

사모님과 자녀분들 그리고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도

지난번 힘에 겹도록

정성껏 모아 보내주신 차량 헌금 잘 받았습니다.

바로 구입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서류가 도착하지 않아

어제 오후에서야 차를 가져 왔는데,

7년 된 포드차로, 상태는 양호하고, 뒤 트렁크에 켑을 씌우고

의자를 만들면 10명 정도는 거뜬히 탈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부터 고산 지대로 다니는데,

어제까진 렌트해서 다녔는데,


다음부터는 저희 차로 다닐 수 있겠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8년 8월 22일

권진안 선교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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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난과 역경이 찾아옵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같은 고난과 역경을 잘 대처해야 합니다.


찾아온 고난을 잘 극복하면 성공하지만 극복을 잘못하면 실패자가 됩니다.

고난과 역경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소중한 가치이며 자산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입니다.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먼저 중요합니다.


끝이 없는 터널은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은 극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극복한 사람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39세에 소아마비가 걸려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

중증장애인 루즈벨트는

그 후 소아마비 백신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을 극복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축복이 되었습니다.

아픈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었으며

겸손하게 되고, 기도하므로 능력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좋은 일을 역사 하십니다"


"오늘 실패했으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나의 약점이(장애가) 강점이 될 수 가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긍정적인 힘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고난을 잘 극복하면 나도 성공 할 수 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공급 받아서 나에게 찾아오는 고난을 잘 극복하며

순간순간 승리와 성공의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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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8월 2일 주일 예배 시간에

태국에서 사역하시는 박영성 선교사님의 사역 지에서

어머니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에

후원하는 선교헌금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에 사랑의 쌀 선교 헌금을 하려고

지갑에서 $ 100 불 짜리 한 장을 꺼내어

헌금 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 100 불 짜리 돈을 다시 지갑에 넣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 25 불을 지갑에서 꺼내어 사랑의 쌀 나누기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 시간 이후부터 지갑에 $ 100 불은 세이브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생각이 번갈아

후회와 행복이 교차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크레딧 카드 월 페이먼트를 하기 위해서

모 은행에 가서 $ 400 불을 페이먼트를 하였습니다.


크레딧 카드 페이먼트를 한 후 영수증을 받고 나서,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하고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 하루를 지내고

오후 5시경에 영수증을 확인 해보니


분명히 $ 400 불을 은행 직원에게 주고 페이먼트를 했건만

웬일인지 $ 400 불이 아니고 $ 300 불의 영수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 100 불은 없어지고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때 부터 지갑을 확인하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헛수고요, 머리 만 복잡하고,

결국 $ 100 불은 잃어버리고 후회만 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마음에 감동을 주신 대로 순종하며

$ 100 불을 태국 사랑의 쌀 사랑 헌금을 했더라면


하나님께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쌀을 받는

불우한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을 주었을 것을 생각하면서

아까운 마음이 들어 순종하지 못한 삶을

후회하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순간의 아까움 때문에 감동을 주신 것에 대해 순종하지 못한

목회자의 부끄러운 삶을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마음의 다짐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 100 불은 잃어 버렸지만

후회와 깨달음을 얻게 된 행복한 시간이 된 것입니다.


후회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입니다.

뉘우침의 과정까지 가야 제대로 된 후회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잘못 혹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것들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잘못이나 실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회가 동반된 삶이라면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던 요나처럼 말입니다.


아쉬움이라는 과거에 머물지 말고

깨닫는 현재와 뉘우치는 미래를 함께 보시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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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에 서울 영등포에 있는 김 안과 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하고.

조용한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저의 큰 아들이 워커힐 호텔을 얻어 주어서 휴식을 하기 위해

제가 타고 간 차가 소형차로 마티즈를 타고서 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호텔 종업원이 제가 탄 차를 보고 빨리 빼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당황한 것입니다.

“야 내가 오늘 이 호텔 투숙객인데 이게 무슨 짓이야” 라고 말을 했는데도

차를 빼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빼고 말았습니다.


그 후 호텔 체크인을 하고 난 다음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저의 큰 아들이 호텔에 와서 큰 아들 차를 타고 식사를 마치고

큰 아들의 차인 인피니트 SUV를 타고 호텔 프런트에 도착하였습니다.

차를 빼라고 난리를 치던 그 친구가 웬일인지 어서 오십시오 하며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때 저는 차의 외모(차 종류)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인 것과

또 사람의 대우가 다른 것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값이 비싼 것을 좋아하며,

값이 비싼 음식을 먹으려고 하며,

값이 비싼 옷을 입으려고 하고,

차도 비싼 외제차를 타려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은 아주 비싼 것과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명품만을 좋아하고

명품만을 가지려고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비싼 것이 곧 명품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게 외모와 명품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 들은 세상 사람과 같이

외모만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서 안 됩니다.


신발장이 고급이냐, 모양이 좋고, 비싼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발장 속에 어떤 신발이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옷을 넣은 옷장이 문제가 아니라

옷장 속에 어떤 옷이 들어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집도 마찬 가지입니다.

집이 얼마짜리 집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더욱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된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외모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사람의 중심을 보고 판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을 보고 판단하고, 사람을 대우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15.03.28 19:27

고난의 주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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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주님과 함께!

 

오늘은 2015 3 29일 주일이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 하신 종려 주일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이 같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다른 종교가 흉내를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질고를 담당해 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망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진리요,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러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고,

           세상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당하신 고난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 동안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들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나 때문에 아직도 십자가에 달려 갖은 고통을 당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고

              가난과 질병과 연약함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요함, 강건함,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는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고난의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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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귀 하면 (영) ear, (히) 오젠, (헬) 우스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단순히 듣는 기관으로 신체의 일부분 말하는 귀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비유로 사용 된 귀가 있습니다.


* 사람이 살면서 듣는 귀를 소유한 것이 축복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들을 수가 없다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습니다.

  놓치지 않고 들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서는 안 될 말 또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에서 뱀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자신과 인류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탄의 소리, 뱀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교만함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습니다.

  좋은 것만 듣는 복된 귀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 사람이 가련(불쌍)한 귀가 되어서 안됩니다.

   렘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

 * 구원이냐 파멸이냐, 사느냐 죽느냐의 판국에 하나님의 말씀을 욕으로,

   공갈로 듣고 회개하지 않으려 합니다.

   답답하고 한심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 불쌍하고 가련한 이 백성처럼 오늘도 마지막 때의 경고가 내린

   종말 시대를 외면하는 가련한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2. 사람이 완악한 귀가 되어서 안됩니다.

   렘6:13

   죄로 만연된 유다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했으니

   탐욕과 거짓으로 양심을 버린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그들은 완악하여 평강치도 못하면서 '평강하다 평강하다'하며

   백성을 속이는 종교 지도자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귀가 죄악으로 완악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이 미련한 귀가 되어서 안됩니다.

   잠언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죄악으로 완악해지고 가련해진 귀가 되었으니

   거룩한 하나님의 음성을 식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증한 일, 가증한 소리를 들어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4. 사람은 복된 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늘 신령한 귀와 복된 귀가 되게 하소서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 마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사람이 듣는다고 해서 거짓의 소리까지 다 듣고 그 소리에 혼동하며 살면 안됩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를 잘 듣는 성도의 복된 귀가 되어야 합니다.


 * 거짓 선지자들의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거짓 예언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갖고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2015.04.04 20:00

2015년 부활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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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부활의 아침 !

 

우리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구속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을 여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축하하기 위해서

부활절 축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부활의 주님과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른 해 보다 너무 춥고, 눈도 많이 온 겨울이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에 우리의 신앙과 믿음생활에

새 힘과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절을 맞이하시는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부활의 능력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고난과 죽음 뒤에 온 부활이기 때문에

더욱 감격스럽고

죽음 이후 주신 생명이기에 더욱 더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망과 낙심과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안할찌어다.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을 여러분의 삶과 가정 위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천국에 갈 때까지

승리하는 신앙의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이 삶에

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를 바랍니다

 

2015 4 5

뉴 욕 한 신 교 회

장 길 준 목사

 


2015.04.12 08:12

성도의 지혜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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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지혜롭게 살려고 노력하며 삽니다.

 지혜롭게 살려고 잘 난 체하며 살아갑니다.

                 많은 것을 아는 체하며 살면서,

                 있는 체하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성경은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말합니다.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삶이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척, 척하며 사는 것보다 생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설 때에 우리가 살아온 삶이 무너지지 않고

 반석위에 세워진 집과 같이 건전하게 세워진 삶의 결산이 될 때에

 지혜로운 삶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둘째: 주님의 은혜, 사랑을 알았으면 부지런히 갚은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이 주신 복음을 증거하며 사는 삶이 지혜의 삶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성도들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파하며,

 주님의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께 늘 상급을 받는 지혜로운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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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천사라고 불리 우는 헬렌 켈러는 3중 불구자습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때 앓은 뇌 척수염으로 인해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였지만 절망하지 않고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불구의 몸이지만 왕성한 의욕과 꿋꿋한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삶을 전개하며 피나는 노력을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던 날 헬렌은 브릭스 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고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설리번 선생님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졸업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헬렌의 천재성과 설리번 선생의 휼륭한 교육을 일제히 찬양하였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세 가지의 고통을 이긴 성녀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헬렌은 “3일 동안만 볼 수 만 있다는” 책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만약에 내가 사흘 간 볼 수 만 있다면


첫째 날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리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떠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싶다”.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겠습니다.

점심때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 구경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사흘 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불굴의 의지인 헬렌 켈러는 보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매일 누리는 평범한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산다는 것 행복 것입니다.

사람이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것 복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평범한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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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산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나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살지 못하면 그 삶은 불행한 삶입니다.


* 인정이란 단어의 뜻: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하나님께 확실하게 인정을 받고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누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까?


1.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삶을 인정받고 사는 것입니다.

1. 자기 부모와 배우자, 자식, 친구 등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사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1.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사는 삶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에 주님께 인정을 받을 있습니다.


요 15: 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들어 당신은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십니다.


* 성도들은 포도나무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은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 포도나무 가지가 자유스럽게 살고 싶다고 포도나무를 이탈하면 결국 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에 풍성한 생명을 얻습니다.


사는 길이 열려집니다.

인생의 삶에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는 가지라는 사실을  항상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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