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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Ministry Co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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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2016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감격한 마음을 가지고 한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금년도 마지막 12월 31일 보내면서

송년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의 인생의 남은 날도 쉬 지나 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난 한해가 그러했듯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우리 인생의 정점에 서게 되면,

우리의 날들도 살같이 빨리 지나갔다는 것을 발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는“사람답게”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사람답게”살아가는 삶을 네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용서하는 삶

골3:13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하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하면서 사는 것은,

내게 손해를 끼친 사람, 얄미운 사람,

큰 잘못을 범한 사람을 용서하면서 산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의 마음을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우리도 사랑하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이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남은 날을 사랑하며, 용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는 삶

골3: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사람은 가정에도 국가에도 평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 어디에도 진정한 평화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가정과 삶을, 교회와 사회를 지배하라고 말씀합니다.

남은 날을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주장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

골3;13절

“누가 뉘게 협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남을 용서하는 삶, 그리스도의 평강이 지배하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하는 삶을 통해서 완성하게 됩니다.

예배의 삶은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정립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며, 예배하는 삶은 시대가 바뀌어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생활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고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사람과 같습니다.

삶 전체가 예배하는 모습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

골3: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주어진 환경에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으면

도무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구속받은 성도가 된 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바로 풍성한 삶인 것입니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허락하시는 새해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요?

새해에는 나의 삶 속에서 잘못된 모습들,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들은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고 사랑 받는 사람들답게 살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날들이 얼마쯤일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날 동안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로 작정하고 계획을 세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새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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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맞이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는 여러분과 가정과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까요?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순간에는

  물에서 구원해주는 사람이 왔을 때가 가장 기쁜 순간니다.

  암으로 죽는다는 사망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는

  암으로 인해 죽어가는 자신을 고쳐 줄 의사를 만나는 순간이 가장 기쁜 순간니다.

  사람이 배고플 때에는

  먹을 것을 가지고 온다는 소식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까요?

  그 이유는 바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고 추한 짐승이 우거하는 외양간에 말구유에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의 날이 된 것이고,

   죄에서 해방시켜 줄 구원자가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

   성탄절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천국 소식을 가지고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사랑과 용서를 가지고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오늘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수많은 찬송 가운데 오셨습니다.

     성도들에게 항상 찬송하며 살아가라고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기도하는 자 중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에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가라고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예언의 말씀하신 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성탄은 영광중에 오신 날입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늘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가 되었습니다.


5)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성탄절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성탄이라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셨습니다.

     성탄절,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꼭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가정과 생애가 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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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면서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면서 말해주는 것의 차이를 우리는 종종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요즘 같은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옳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이 다 옮은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말해주는 것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의 말하는 것을 들어 보면

  모든 것에서 본인이 말하는 것이 다 옳고, 정확하고,

  본인의 말만 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만약 본인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면 상대방을 향해 화를 내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때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삶의 대한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삶으로 인해

  결국 상대방에 대한 아량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세삼 느껴봅니다.


  지난 11월 20일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서 0시 50분 대한항공편으로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전철과 기차표를 구입하면서 “표 한 장 주세요.” 했었습니다.

  표를 파는 사람이 저를 보더니 경로 우대 표를 주었습니다.

  경로 우대 표를 주는 것을 보면서

  문득 ‘아, 세월은 속일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경로 우대 표를 받을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었는데

  세월의 흐름은 막지 못했었나 봅니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이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더 정확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라고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나 자신을 한 번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우리는 자신을 옳다고 여기면서 본인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는지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면서

  서로를 사랑하며, 존중하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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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삶을 살다보면 염려와 위기의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힘든 위기의 순간을 당해서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염려와 걱정과 근심은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대면하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힘든 위기를 당할 때에 우리는 염려하면서 살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 하며 살 것인가? 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일은 자기 자신의 삶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건강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에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는 것이 모든 근심과 염려에서 해방을 받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2: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기도는 우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음 없이 구하는 것은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눅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염려를 하면 두통을 일으킵니다.

고혈압을 발생하게 됩니다.

근육통 및 설사 구토, 발한, 흥분,

기억력 저하, 불면, 강박감, 충동적인 것을 불러옵니다.

염려와 걱정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기 않기를 원해야 합니다.


저는 약 25년 전에 식중독으로 인해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2주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호흡이 힘드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아무것도 생각과 염려가 없고

오직 호흡을 자유스럽게 하는 것 밖에 소원이 없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염려와 같이 사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염려의 순간에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건강의 비결이며

모든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여유 있게 받아 넘어가는 삶도 필요합니다.

웃고 넘어가는 법을 배워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강한 삶입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라"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해주신 것을 생각하며

긍정적 생각을 하며 감사를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조절 할 수 가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맡기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 염려의 순간에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염려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2015.12.26 20:48

메리 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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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5년에 미국에 도착하여 이민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에서의 첫 번째 성탄절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즐겁게 경배하며 축하하는 분위기가

어디에 가든지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해가 거듭하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Happy Holiday이라는 말로 바꾸어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해피 할라데이로 바꾸어진 것은 통탄해야 할 일들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살면 안 되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이라는 단어와 ‘그리스도’라는 말과 함께 ‘경배’가 합쳐진 합성어인 것입니다.


즉 즐겁게 그리스도를 경배한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리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께만 경배를 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신 분입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가 경배의 대상인 것입니다.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알고 그리스도께만 경배를 해야 합니다.


즐겁게 그리스도를 경배가 없는 성탄절을 보낸다면

성탄의 진정한 그 핵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성도들은 성탄절에 누가 경배의 대상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고, 헛된 성탄절을 보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오직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며 온 세상이 즐겁게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성탄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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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보는 기능을 하는 감각 기관”을 눈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첫째로 육신의 눈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눈입니다.


눈이 밝지 아니하고, 침침하면 삶이 매우 힘들고 피곤합니다.

눈이 밝으면 사물을 밝게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이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가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에게는 영의 눈이 있습니다.

실제로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아니한 내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영의 눈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눈과 영의 눈이 꼭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아 왔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은 수많은 외침과 수난 속에서도

그들이 잘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 때문있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차서 주님이 오시는 던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영적인 눈이 어두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줄 거의 모두가 잊고 있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유대와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처럼

오늘도 여전히 주님을 영접치 못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성탄에도

소수의 사람은 놀랍게도 오시는 주님을 알고 기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엘리사벳은 몸에 아기를 수태한 마리아를 보고

즉각 태중에 있는 예수님의 방문을 알아보았습니다.


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몇 주가 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엘리사벳은 주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마리아를 축복하고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기뻐한 것입니다.


영적인(믿음의) 눈을 가질 때에 주님을 맞이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번 성탄에 믿음의 눈을 가진 성도가 되어서

주님을 진정으로 축하는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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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최초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인간은 수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얼굴에 흠을 가리기 위해서 화장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사람은 옷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가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계,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예뻐지려고 노력하며 치장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진가를 높이기 위해서

학력도 높이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 명품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다고 진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삶을 통해서 진가를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삶이 평안할 때에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바르게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잘못된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그 사람의 진가를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의 이민 초기에 우드사이드 지역에서 남자들만 6명이 아파트를 얻어서

룸메이트를 두고 같이 공동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렌트비도 서로 나누어 내고, 식사 생활하는 것과

모든 공과금도 서로 나누어 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헤어드라이어가 과열되어서 아파트에 화재가 났습니다.

소방관들이 출동하여 불이 진화 되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하니 같은 룸메이트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화재 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

그 때에 다시 집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났을 어디에 갔다가 이제 왔느냐고 말하니


신분이 없어서 이민국에 잡혀 갈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피했다가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룸메이트도 평상시에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인정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자기만 살자고 도망을 갔다가

다시 평안해지니 돌아오는 룸메이트를 생각하면서

사람은 평안할 때에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누가 진짜인가 아니면

누가 가짜인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웃과 관계 속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도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가정에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삶을 통해서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이 필요합니다.

신앙인들도 평안할 때에는 진짜와 가짜 신앙을 쉽게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삶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의 믿음이 올바른지 아니면 잘못된 믿음인지 구분하기 쉽습니다.


성경에서 욥은 고난과 환난 중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갑절이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의 생애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고난 중에서 인내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진실한 삶으로

끝가지 견디는 자가 되어서

최후에 진가를 발휘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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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목이 마를 때도, 고기가 먹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불편으로 인해 큰 은혜를 잊으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불평과 원망의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축복의 때가 늦어지고

그 결과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40년이라는 광야생활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었던 자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

명하였습니다. 그 후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려 왔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때에

더 큰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삶에서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살전 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누가 봐도 감사할 것에 감사하는 것은 성도의 감사가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진정한 감사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해도

우리의 건강이 좋지 않아도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활환경이 좀 불편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은 공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사람이 “원망과 불평의 기차를 타고 달리면”

스치고 만나는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권태롭고 불만스러워집니다.

결국 후회와 파멸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감사의 기차를 타고 달리면”

만나고 스치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즐겁고, 만족스럽고, 결국에는 행복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불평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그러므로 불평과 감사는 공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불평 가운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적어도 자기 자신은 그렇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감사란 그런 것입니다.

조건에 따라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한 분 만으로 이미 나는 만족하고 감사할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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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면 계절에 따라 나무의 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겨울에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나무와 가지만 보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이 되면

봄에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가지에 움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움이 자라서

나무 잎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며 점점 커져 가면서

앙상한 나무의 모습이 변하여서

균형이 잡혀 진 나무의 모습으로 바꾸어집니다.


봄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꾸어지면 나무는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어야 합니다.


지난여름에 우리 집에 있는 향나무가 뜨거움과 가뭄에 견디지 못해서

10그릇의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지 못하면 나무가 말라 죽고 맙니다.


나무가 죽으면 나무로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의 잎의 모습이 파란 색으로 바꾸어집니다.

살아있는 나무 밑에 들어가면 나무가 태양을 가리 워 줍니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나무가 인간들이 배출한 일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나무는 우리 인간들에게 필요한 산소를 내놓습니다.


사람에게 없어서 안 될 꼭 필요한 것을 우리 인간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나무은 인간에게 없어서 안 될 소중한 자연의 하나입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같이

이웃과 세상에 유익을 주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패괴하면서 삶을 살아간 다면

얼마 가지 않아서 세상은 힘든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 갈 때에 행복자입니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로 계절이 바꾸어집니다.


가을에 나무들의 모습이 변합니다.

나무 잎의 색갈이 조금씩 변화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색깔이 변화되어 사람들이 좋아 하는 단풍잎이 됩니다.


나무가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하는 단풍이 들면

사람들은 나무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않고

단풍 구경를 갑니다.

사진 촬영도하고, 비데오 촬영을 합니다.


아 진짜 아름답다고 말하며 감탄사를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주는 나무의 단풍은 실제로 나무로서 슬픈 사건입니다.

마지막 나무로서 최후의 발악하는 것이

나무의 단풍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아름다운 단풍도 시간이 지나면 잠간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하나씩, 둘씩 아름다운 단풍잎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11월 첫 주에 산에 올라가보니 얼마 전 만해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감탄을 했던 나무의 단풍은 거의 다 떨어져서

나무 잎은 땅에 쌓여 있는 위를 걸어가다 보니


사람에게 좋은 산소를 제공해 주던 나무 잎을 밝고 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추운 겨울철이 올 것입니다.

나무는 다시 앙상한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서

나무가 추운 겨울철에 추위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나무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죽으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제공을 해주지 못합니다.


사람은 나무와 같은 인생임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면서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는 부모님의 은혜로 성장하며 성장기를 지납니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 결혼 하여 가정 및 자녀를 낳고 살다가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릅니다.


나무와 같이 잎이 떨어지며 추운 겨울철에 잘 견디지 못하면

나무가 얼어 죽는 것 같이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 잘 견디어야 합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이기지 못하고 지게 되면 죽게 됩니다.


살아남지 않으면 남에게 좋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나무와 같이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의 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세상에 유익을 주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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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나름대로 무척 바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꼭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지난 하루였습니다.


공교롭게 하루의 일과가 밤 11시 40분에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늦게나마 시작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2015년 10월 30일이 지나가는데 단 몇 분밖에 남지 않습니다.

결국 목표를 세워 놓고 하려고 하는 일을 마치지 못한 하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기의 삶으로 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에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지낸다면

후회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 갈 때에

인생은 성공과 행복의 삶으로 이어져 갑니다.

그렇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산다면 실패의 삶이 되고 맙니다.


마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성경에서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주인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먼 나라에 떠났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면서 다른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각자가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충실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가 받는 것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였습니다.


자기의 능력에 따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들에게 주인은 똑같이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마28: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25: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주인에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준 주인의 의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고 그 재능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 와서 결산을 할 때에

주인에게 받는 그대로 주인에 주어질 때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원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는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무가치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낭비를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받은 것들 시간, 지위, 권한이나

소유물 등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착각을 하였습니다.


자기는 주인의 맡겨 준 청지기란 사실을 모르고 산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인이 원하는 소중한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하루하루 하나님의 청지기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는 자와 같이

자기의 삶에 이익을 남기며 살 때에 진정으로 행복한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잘했다고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충실하게 사는 자가 행복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며

잘 했다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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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Englewood 집을 2005년도 구입하여 오늘까지 살고 있습니다.

집 주위에 Flat Rock Brook Nature Center 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앞으로 10년 동안 지나다니면서 살았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의 소개로 Flat Rock Brook Nature Center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가보니 아주 마음에 드는 환경이 있었습니다.


산책을 할 수 있는 길도 있었고

등산을 할 수 있는 길도 있는 곳입니다.

자연 환경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나무숲 속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이 있고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물소리가 들리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환경입니다.


그 곳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깊은 산속에 들어 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사슴들이 중간 중간에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평화로움을 느끼는 곳입니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이 시대에 참으로 소중한 장소인 것입니다.

운동도 할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Flat Rock Brook Nature Center를 발견하고 나서

그곳에서 등산도 하고, 산책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감사를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기가 소유한 것과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지냅니다.

소중함을 발견하는 자만 감사를 알게 되고,

소중함을 알게 될 때에 진정으로 행복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지나가는 길이 지만

생각 없이 지나가고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소중한 것이 있어도 10년 동안 발견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주변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행복자인 것입니다.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좋게 보이게 됩니다.

남의 것이 좋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남의 떡이 먹음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보배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곳에서 소중하고 귀한 보배를 발견하는 눈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나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정부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발견하며 행복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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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을 자기가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수요일 오후 5시에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기 전에

냄비에 된장국이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가스 불이 켜져 있는 채

불을 끄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가스 불을 끄지 않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수요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밤 11시 경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에 집에서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문을 열고 부엌에 가보니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은 채로 집을 나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집에 불이 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스 불은 6시간 정도 세게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냄비는 시커멓게 타 버렸고

가스레인지 부근은 뜨거워서 근처에 가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집 안에는 연기가 탄 냄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부엌 마루까지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올랐습니다.

아마도 집에 불이 나기 직전에 집에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만약 알람이 울려서 911 신고가 되었다면

집에 문이 잠기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거나

소방관들이 와서 난리가 나고 재산 피해가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 집과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적당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게 하신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나는 위기를 모면케 해주신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해주심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3:26-28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서

사자의 밥이 될 뻔 했던 다니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풀무불 속에서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사자 굴과 풀무불 같은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성도들을 지켜 주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을 받는 행복한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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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두가 한쪽으로 닳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자세가 기울어졌다고,

그리고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 졌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기울어졌다는 쪽을 아무리 올려 보지만 마찬 가지입니다.


저의 자세가 기울어지는 원인은 신발에 있었습니다.

신발이 바르게 닳지 않고

한쪽만 닳았기 때문에 자세가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신발을 신고서 하루에 만보 정도 걷고 나면

운동을 했으니 당연히 몸이 좋아야 하는데

좋지는 않고 도리어


허리도 아프고, 발도 아프고, 온 몸이 아픔을 느낍니다.


사람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신발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발이 바르게 닳지 않으면 바른 자세가 나오지 못하며

그 신발을 신은 채로는 무엇을 해도 사람의 자세가 바르게 되지 못합니다.


신발이 한쪽으로 닳아진 신을 신고 서있으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세가 됩니다.


그리고 걷는 동안에도 기울어져 자세도 좋게 보이지 않고

몸도 불편하며 특히 허리 및 발에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신발이 한쪽으로 닳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자세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걸을 때에도 바른 자세로 걷지 않기 때문입니다.

팔자걸음을 걸어서 구두 뒷굽이 한쪽만 달았습니다.

그렇기에 바른 자세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발도 아픈 것입니다.

사람이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의자에 앉자 있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바르게 앉는 습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바르게 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르게 걷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자세와 인생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남의 것을 취하려는 삶은 도둑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계 평화와 인류를 위한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자세가 신발을 비정상적으로 닳게 하고

그렇게 닳게 된 신발은 다시 우리에게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른 자세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자세가 바로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신앙인의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사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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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서


한 주간에 온도가 섭씨 50도 전후의 약간 싸늘한 날씨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한 주간 동안에 비와 바람이 동반하는 날이 계속되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서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습도 또한 높은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의 마음도 날씨와 더불어 무언가 우중충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의 일과를 하는 데에도 힘든 시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날씨와 직접적으로 부딪쳐야 하는 매일 하기로 결심한

운동량을 채우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제도 만보 걷기에 5천 9백보 정도 밖에 걷지 못했습니다.

비가 와서  걷지 못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 아쉬운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걷기 운동은 시작도 못한 채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마음을 먹고

뉴져지 주 레오니아에 있는 오버펙 카운티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이슬비는 내리고 바람은 세게 불어 걷기에 매우 힘이 드는 환경이었습니다.

걷기 시작했습니다.

약 2천 보 정도 걷다가 그냥 들어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오늘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면

너는 만보 걷기에 실패자가 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추워도, 비가와도 맞으면서 참고

오늘 목표는 오늘 끝을 내자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2천 보를 더 걷게 되었습니다.


다시 걷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려고 하다가 또 다시 2천 보를 돌게 되고

그러한 마음이 계속 돌고 돌아

결국 1만 1천 보를 걷고 하루의 운동량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는

힘들었던 시간과 포기하려고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늘 운동량을 채웠다는 승리감과 성취감을 맛보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하루의 일들 중에 만보 걷기에 성공한 것은

저에게 성취감을 안겨준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해 봅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행복한 시간과 행복자가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욥은 동방의 의인이요,

하나님께서 동방의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분입니다.

욥에게는 원치 아니했던 시험과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험과 고난을 잘 통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욥 42:10-17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 욥은 고난과 시험을 잘 통과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참고 인내하여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은 결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인생의 행복자가 된 것입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힘들고, 인내하기 힘들어도

   끝까지 견디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자가 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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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성공할 때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자 와 실패한 자의 차이는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성공을 하면 마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자의 마음에는 기쁨이 사라지고 맙니다.


권력과 권세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어리석은 실패자의 삶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돌고, 돌고, 돌아가는 것이 모든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삶의 비결입니다.


예전 주말 연속극 중에 기황후 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기황후(奇皇后, 1301년-1315년경)는 원나라 혜종의 황후입니다.


이 연속극에는 대승상 연철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권력과 권세와 모든 황제의 황권까지 소유한 사람으로서

황제를 여러 번 자기의 마음대로 교체하며

황제를 자기의 마음대로 휘여 잡아

30년이라는 세월을 권세를 누리며 살았던 자입니다.


자기가 가진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계획한 것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결국 자기 자식들과 가정과 자신도 죽게 되며

부족이 멸하는 비극의 장면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은 세상에서 실패하게 되면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자기의 생각대로만 살아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성공자로 살아야지

실패자로 삶을 산다면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실패하면

학업생활, 직장생활, 사업에 실패하면, 가정생활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합니다.

흔히 실패하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 다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을 돌리며 외면합니다.

삶의 실패자는 더 이상 설 땅이 없습니다.

실패한 인생은 참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자가 되고 맙니다.


마11: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자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떠한 실패한 자라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삶의 용기와 소망을 주십니다.

사람이 실패에 자리에서 성공의 삶을 사는 비결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가능합니다.


주님 앞에서 실패한 자는 없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향한 도전자만 있을 뿐입니다.

주님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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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일을 마감하고 나서

그 결과에 대한 성취감을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사전에서 성취감이란?

자기가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고 느낌을 말합니다.


그 일을 내 힘으로 다 끝냈을 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성취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루 동안에 수많은 일을 해결하고,

처리하면서 살지만

그러나 자기가 일을 시작하고 끝을 맺지 못하고

그만 두어야 하고 포기를 해야 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잘 마치고 나면 마음에 성취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성취감이 곧 행복감입니다.


그 행복한 성취감을 갖기 까지는

수많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성취감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쓸쓸함을 가지게 됩니다.


요즈음에 사람들과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면 쉽게 말합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운동은 하세요? 하며 물어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운동을 못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하루를 살면서 해야 중요한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하고 아주 소중한 것이 운동입니다.


운동을 할 때에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운동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요즈음 제가 걸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것을 시작해보니 하루에 만보가 작은 걸음도 아니고,

만보를 걷기 위해서는 시간과 더불어

또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다리도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양발에서 발가락이 아파서 피가 나오기도 하고,

날씨가 덥고, 땀도 나고, 춥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며, 때로는 걷기도 싫고, 그래서 포기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하루에 만보를 걸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루의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 여러 번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싸움에서 이기면 성취감을 가지게 되고

행복감을 가지게 됩니다.


마25:20-21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나서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순간의 자리에 선다면

영육 간에 최고의 행복한 삶을 살았던 성취감을 소유하는 축복자가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생각하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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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이 그리 쉽고, 만만한 삶이 아닙니다.

매일 새날이 오고 하루를 지내면서 살고 있지만

매일 매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연속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행복한 삶이 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불행한 삶이되기 때문에 그리 쉬운 삶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중요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하고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지켜야 할 일은 바로 자기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첫째로 중요한 일이 하루 밥 3끼 먹는 일입니다.

요즈음과 같이 바쁜 세상에 살다보면

하루 3끼 밥을 제대로 먹고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살다보면

밥을 하루 3끼 먹고 사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음식이 먹기 싫어서 먹지 못하고 지나가고 맙니다.

시간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밥을 제대로 먹고 사는 것을

하루의 일과 중에서 첫 번째로 소중한 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때

하루 3끼 식사를 제대로 먹고 살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몸에 영양소를 제대로 공급함으로 우리의 몸도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때로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먹기 싫어하는 음식과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우리에게 놓여 질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을 먹다보면 편식하게 됩니다.

편식하다보면 영양분을 우리 몸에 골고루 공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건강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자기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행복한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육만 건강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육신이 먼저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양식도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 줄 때에

영적 성인병에 결리지 않고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 건강을 위해서 밥을 하루에 3끼 먹어야 건강한 것 같이

우리의 영혼의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건강해 집니다.

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늘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올 여름은 다른 해보다 무척 더운 여름이고 또한 가물어서

잔디밭과 모든 자연에 물이 부족하다보니 말라 죽은 자연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제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짐으로 땅이 생기가 돋고

잔디와 모든 자연 환경에 생기가 돋는 모습을 볼 때에


아무리 인간이 자기 건강을 위해서 좋은 것 먹고. 즐기며

노력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육 간에 삶에서 자기와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승리가 될 때에 행복 삶이 됩니다.


영과 육이 건강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먹고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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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면서부터 죄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늘 부족함과 허전함을 느끼면서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며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면서 자랑하려고 힘씁니다. 그래서


자기를 잘 보이려고 성형 수술도하고, 꾸미기도 하고,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하며, 명품을 가지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 것을 자랑하며 노력해도

결국 참 행복과 만족함을 얻지 못합니다.


인간들은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 이후에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늘 자기만의 바벨탑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육 간에 건강한 사람은 열등의식 속에서 살지 않습니다.


어떤 허세나 자기를 나타내려고 자랑하지 않고

내면의 삶에서 충실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면서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랑거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세상에서 자랑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를 만들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랑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하게 됩니다.

교만하다 보면 겸손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겸손이 사라지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인생의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신을 자랑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의 자랑거리를 말을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칭찬하시고 자랑을 해주신다면 가장 큰 축복입니다.


* 자랑이란? 뜻은

일반적으로 자랑은 자기 또는 자기와 관계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자랑의 의미를 나쁜 의미와 좋은 의미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교만이나 건방짐을 동반하는 자랑은 나쁜 의미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나타내는 자랑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좋은 의미의 자랑입니다.


고전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의롭고,

거룩한 삶이 가능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소망이 없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거리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만 의지하고, 십자가만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십자가가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면서 사는

우리의 고백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과 자기 자신만을 자랑하는 삶을 살지 말고

오직 예수 십자가만을 자랑하면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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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과 버림을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은 버림을 당하는 것 보다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랑을 받기를 원하면서 살지만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 배신, 이별의 슬픔을 당해 불행하며 슬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원하는 사랑을 받으면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원하는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쉬운 삶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대가는 무엇입니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 사랑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의 원하는 삶은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 속에서 사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주면서,

참고, 인내하며,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결국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버림을 당하면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 “버리다” 의 단어는 (영) cast way (히) 아잡 (헬) 아피에미

성경에서 “버리다” 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형벌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외면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버리는 행위에 포기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으며

버리는 것은 배신의 행위를 설명하는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셀 수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또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호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께서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가 바로

야곱이 환도뼈를 내어드리면서까지 하나님을 붙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를 통해 우리에게 부르짖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바라보며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아


하나님의 관심을 온 몸으로 느끼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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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벌(매)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상을 받기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죄를 범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벌(매)을 받아야 합니다.

  착하고 잘했을 때 상을 받는 것입니다.


“벌하다”라는 단어는 (한) 벌하다 (영) punishment

                      (히) 파카드 (헬) 에크디케오 란 단어입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지은 죄에 대하여 깨달음을 주기 위해 취해지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벌하다”의 의미는

                               죄인에게 그 죄를 깨닫게 하는 의미 뿐만 아니라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름으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의 의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해지는 벌은 철저한 보복 법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것이었습니다.


  이 벌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형벌의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법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벌 또한 복수보다는 사회 질서의 유지와 보호의 차원으로 발전했습니다.


  벌은 일반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실수나 법률적 과오에 대해 조치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잘못하고 죄를 지으면 벌(매)을 받는 것이 순리입니다.

  잘못에 대해 벌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갈 6:8-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심은 대로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한 대로 따라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각 사람에게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신실하게 행한 사람들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주어집니다.


  강팍하고, 완고함을 좇아

  자기의 고집대로 행한 사람들에게는 저주와 벌(매)이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벌(매)를 받지 않으려면 죄와 불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소망의 열매를 맺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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