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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Ministry Co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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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보는 기능을 하는 감각 기관”을 눈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첫째로 육신의 눈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눈입니다.


눈이 밝지 아니하고, 침침하면 삶이 매우 힘들고 피곤합니다.

눈이 밝으면 사물을 밝게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이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가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에게는 영의 눈이 있습니다.

실제로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보이지 아니한 내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영의 눈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눈과 영의 눈이 꼭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아 왔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은 수많은 외침과 수난 속에서도

그들이 잘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 때문있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차서 주님이 오시는 던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영적인 눈이 어두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줄 거의 모두가 잊고 있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유대와 베들레헴에 사는 사람들처럼

오늘도 여전히 주님을 영접치 못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성탄에도

소수의 사람은 놀랍게도 오시는 주님을 알고 기다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뜨겁게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엘리사벳은 몸에 아기를 수태한 마리아를 보고

즉각 태중에 있는 예수님의 방문을 알아보았습니다.


출생하지도 않았습니다.

몇 주가 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엘리사벳은 주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마리아를 축복하고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기뻐한 것입니다.


영적인(믿음의) 눈을 가질 때에 주님을 맞이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번 성탄에 믿음의 눈을 가진 성도가 되어서

주님을 진정으로 축하는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시기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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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최초의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인간은 수치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얼굴에 흠을 가리기 위해서 화장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사람은 옷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가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시계,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 예뻐지려고 노력하며 치장을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의 진가를 평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진가를 높이기 위해서

학력도 높이고, 좋은 것을 소유하고 명품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다고 진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삶을 통해서 진가를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삶이 평안할 때에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바르게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잘못된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그 사람의 진가를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의 이민 초기에 우드사이드 지역에서 남자들만 6명이 아파트를 얻어서

룸메이트를 두고 같이 공동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렌트비도 서로 나누어 내고, 식사 생활하는 것과

모든 공과금도 서로 나누어 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헤어드라이어가 과열되어서 아파트에 화재가 났습니다.

소방관들이 출동하여 불이 진화 되었습니다.


화재가 발생하니 같은 룸메이트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화재 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

그 때에 다시 집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불이 났을 어디에 갔다가 이제 왔느냐고 말하니


신분이 없어서 이민국에 잡혀 갈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피했다가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룸메이트도 평상시에는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인정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자기만 살자고 도망을 갔다가

다시 평안해지니 돌아오는 룸메이트를 생각하면서

사람은 평안할 때에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누가 진짜인가 아니면

누가 가짜인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웃과 관계 속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에게도 진실해야 합니다.

사람은 가정에서도 진실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친구들 사이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삶을 통해서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이 필요합니다.

신앙인들도 평안할 때에는 진짜와 가짜 신앙을 쉽게 분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삶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의 믿음이 올바른지 아니면 잘못된 믿음인지 구분하기 쉽습니다.


성경에서 욥은 고난과 환난 중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갑절이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의 생애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고난 중에서 인내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진실한 삶으로

끝가지 견디는 자가 되어서

최후에 진가를 발휘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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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목이 마를 때도, 고기가 먹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불편으로 인해 큰 은혜를 잊으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불평과 원망의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축복의 때가 늦어지고

그 결과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40년이라는 광야생활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이었던 자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고

명하였습니다. 그 후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려 왔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살 때에

더 큰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삶에서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입니다.

살전 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누가 봐도 감사할 것에 감사하는 것은 성도의 감사가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진정한 감사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해도

우리의 건강이 좋지 않아도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충분히 하나님께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활환경이 좀 불편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은 공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사람이 “원망과 불평의 기차를 타고 달리면”

스치고 만나는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권태롭고 불만스러워집니다.

결국 후회와 파멸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감사의 기차를 타고 달리면”

만나고 스치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즐겁고, 만족스럽고, 결국에는 행복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불평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그러므로 불평과 감사는 공존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불평 가운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도 우리에게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적어도 자기 자신은 그렇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감사란 그런 것입니다.

조건에 따라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한 분 만으로 이미 나는 만족하고 감사할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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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면 계절에 따라 나무의 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겨울에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나무와 가지만 보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나면 봄이 되면

봄에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가지에 움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움이 자라서

나무 잎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며 점점 커져 가면서

앙상한 나무의 모습이 변하여서

균형이 잡혀 진 나무의 모습으로 바꾸어집니다.


봄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꾸어지면 나무는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어야 합니다.


지난여름에 우리 집에 있는 향나무가 뜨거움과 가뭄에 견디지 못해서

10그릇의 나무가 말라 죽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을 잘 견디지 못하면 나무가 말라 죽고 맙니다.


나무가 죽으면 나무로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의 잎의 모습이 파란 색으로 바꾸어집니다.

살아있는 나무 밑에 들어가면 나무가 태양을 가리 워 줍니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나무가 인간들이 배출한 일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그리고

나무는 우리 인간들에게 필요한 산소를 내놓습니다.


사람에게 없어서 안 될 꼭 필요한 것을 우리 인간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나무은 인간에게 없어서 안 될 소중한 자연의 하나입니다.


우리 인간도 나무와 같이

이웃과 세상에 유익을 주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자연을 패괴하면서 삶을 살아간 다면

얼마 가지 않아서 세상은 힘든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 갈 때에 행복자입니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로 계절이 바꾸어집니다.


가을에 나무들의 모습이 변합니다.

나무 잎의 색갈이 조금씩 변화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색깔이 변화되어 사람들이 좋아 하는 단풍잎이 됩니다.


나무가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하는 단풍이 들면

사람들은 나무의 심정을 헤아리지도 않고

단풍 구경를 갑니다.

사진 촬영도하고, 비데오 촬영을 합니다.


아 진짜 아름답다고 말하며 감탄사를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주는 나무의 단풍은 실제로 나무로서 슬픈 사건입니다.

마지막 나무로서 최후의 발악하는 것이

나무의 단풍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 아름다운 단풍도 시간이 지나면 잠간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하나씩, 둘씩 아름다운 단풍잎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11월 첫 주에 산에 올라가보니 얼마 전 만해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감탄을 했던 나무의 단풍은 거의 다 떨어져서

나무 잎은 땅에 쌓여 있는 위를 걸어가다 보니


사람에게 좋은 산소를 제공해 주던 나무 잎을 밝고 보니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추운 겨울철이 올 것입니다.

나무는 다시 앙상한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서

나무가 추운 겨울철에 추위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나무는 추위에 얼어 죽고 맙니다.


죽으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제공을 해주지 못합니다.


사람은 나무와 같은 인생임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면서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는 부모님의 은혜로 성장하며 성장기를 지납니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면서 결혼 하여 가정 및 자녀를 낳고 살다가

중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이릅니다.


나무와 같이 잎이 떨어지며 추운 겨울철에 잘 견디지 못하면

나무가 얼어 죽는 것 같이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 잘 견디어야 합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서 이기지 못하고 지게 되면 죽게 됩니다.


살아남지 않으면 남에게 좋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나무와 같이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인생의 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세상에 유익을 주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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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나름대로 무척 바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꼭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지난 하루였습니다.


공교롭게 하루의 일과가 밤 11시 40분에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늦게나마 시작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2015년 10월 30일이 지나가는데 단 몇 분밖에 남지 않습니다.

결국 목표를 세워 놓고 하려고 하는 일을 마치지 못한 하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기의 삶으로 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중에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지낸다면

후회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 갈 때에

인생은 성공과 행복의 삶으로 이어져 갑니다.

그렇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산다면 실패의 삶이 되고 맙니다.


마25:14-15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성경에서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주인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먼 나라에 떠났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면서 다른 것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각자가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충실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가 받는 것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였습니다.


자기의 능력에 따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들에게 주인은 똑같이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마28: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마25:24-30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주인에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신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준 주인의 의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지 않습니다.

일하지 않고 그 재능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 와서 결산을 할 때에

주인에게 받는 그대로 주인에 주어질 때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원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는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무가치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만 낭비를 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받은 것들 시간, 지위, 권한이나

소유물 등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착각을 하였습니다.


자기는 주인의 맡겨 준 청지기란 사실을 모르고 산 것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인이 원하는 소중한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하루하루 하나님의 청지기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는 자와 같이

자기의 삶에 이익을 남기며 살 때에 진정으로 행복한 청지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잘했다고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면

영원히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충실하게 사는 자가 행복자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며

잘 했다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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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Englewood 집을 2005년도 구입하여 오늘까지 살고 있습니다.

집 주위에 Flat Rock Brook Nature Center 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앞으로 10년 동안 지나다니면서 살았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어떤 분의 소개로 Flat Rock Brook Nature Center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가보니 아주 마음에 드는 환경이 있었습니다.


산책을 할 수 있는 길도 있었고

등산을 할 수 있는 길도 있는 곳입니다.

자연 환경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나무숲 속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이 있고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물소리가 들리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환경입니다.


그 곳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깊은 산속에 들어 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사슴들이 중간 중간에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평화로움을 느끼는 곳입니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이 시대에 참으로 소중한 장소인 것입니다.

운동도 할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Flat Rock Brook Nature Center를 발견하고 나서

그곳에서 등산도 하고, 산책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감사를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기가 소유한 것과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지냅니다.

소중함을 발견하는 자만 감사를 알게 되고,

소중함을 알게 될 때에 진정으로 행복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지나가는 길이 지만

생각 없이 지나가고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소중한 것이 있어도 10년 동안 발견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주변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행복자인 것입니다.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이 좋게 보이게 됩니다.

남의 것이 좋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남의 떡이 먹음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보배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가까운 곳에서 소중하고 귀한 보배를 발견하는 눈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나부터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가정부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발견하며 행복자의 삶을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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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행복을 자기가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수요일 오후 5시에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기 전에

냄비에 된장국이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가스 불이 켜져 있는 채

불을 끄는 것을 잊어버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가스 불을 끄지 않았다는 생각을 못하고

     수요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밤 11시 경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에 집에서 냄새가 많이 났습니다.

문을 열고 부엌에 가보니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 놓은 채로 집을 나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 집에 불이 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스 불은 6시간 정도 세게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냄비는 시커멓게 타 버렸고

가스레인지 부근은 뜨거워서 근처에 가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집 안에는 연기가 탄 냄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부엌 마루까지 뜨거울 정도로 열이 올랐습니다.

아마도 집에 불이 나기 직전에 집에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만약 알람이 울려서 911 신고가 되었다면

집에 문이 잠기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거나

소방관들이 와서 난리가 나고 재산 피해가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 집과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를 적당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게 하신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나는 위기를 모면케 해주신 것을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해주심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3:26-28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서

사자의 밥이 될 뻔 했던 다니엘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풀무불 속에서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보호해주십니다.


사자 굴과 풀무불 같은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성도들을 지켜 주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을 받는 행복한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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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두가 한쪽으로 닳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자세가 기울어졌다고,

그리고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어 졌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기울어졌다는 쪽을 아무리 올려 보지만 마찬 가지입니다.


저의 자세가 기울어지는 원인은 신발에 있었습니다.

신발이 바르게 닳지 않고

한쪽만 닳았기 때문에 자세가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신발을 신고서 하루에 만보 정도 걷고 나면

운동을 했으니 당연히 몸이 좋아야 하는데

좋지는 않고 도리어


허리도 아프고, 발도 아프고, 온 몸이 아픔을 느낍니다.


사람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신발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신발이 바르게 닳지 않으면 바른 자세가 나오지 못하며

그 신발을 신은 채로는 무엇을 해도 사람의 자세가 바르게 되지 못합니다.


신발이 한쪽으로 닳아진 신을 신고 서있으면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자세가 됩니다.


그리고 걷는 동안에도 기울어져 자세도 좋게 보이지 않고

몸도 불편하며 특히 허리 및 발에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신발이 한쪽으로 닳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의 자세가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걸을 때에도 바른 자세로 걷지 않기 때문입니다.

팔자걸음을 걸어서 구두 뒷굽이 한쪽만 달았습니다.

그렇기에 바른 자세로 걷지 못하기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발도 아픈 것입니다.

사람이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의자에 앉자 있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바르게 앉는 습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바르게 서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르게 걷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자세와 인생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남의 것을 취하려는 삶은 도둑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계 평화와 인류를 위한 삶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자세가 신발을 비정상적으로 닳게 하고

그렇게 닳게 된 신발은 다시 우리에게 고통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른 자세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자세가 바로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신앙인의 바른 자세를 가지고 사는 한 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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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서


한 주간에 온도가 섭씨 50도 전후의 약간 싸늘한 날씨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한 주간 동안에 비와 바람이 동반하는 날이 계속되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서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습도 또한 높은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의 마음도 날씨와 더불어 무언가 우중충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의 일과를 하는 데에도 힘든 시간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날씨와 직접적으로 부딪쳐야 하는 매일 하기로 결심한

운동량을 채우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제도 만보 걷기에 5천 9백보 정도 밖에 걷지 못했습니다.

비가 와서  걷지 못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성취감을 맛보지 못한 아쉬운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걷기 운동은 시작도 못한 채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마음을 먹고

뉴져지 주 레오니아에 있는 오버펙 카운티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이슬비는 내리고 바람은 세게 불어 걷기에 매우 힘이 드는 환경이었습니다.

걷기 시작했습니다.

약 2천 보 정도 걷다가 그냥 들어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오늘 운동량을 채우지 못하면

너는 만보 걷기에 실패자가 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추워도, 비가와도 맞으면서 참고

오늘 목표는 오늘 끝을 내자는 생각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2천 보를 더 걷게 되었습니다.


다시 걷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려고 하다가 또 다시 2천 보를 돌게 되고

그러한 마음이 계속 돌고 돌아

결국 1만 1천 보를 걷고 하루의 운동량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는

힘들었던 시간과 포기하려고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늘 운동량을 채웠다는 승리감과 성취감을 맛보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하루의 일들 중에 만보 걷기에 성공한 것은

저에게 성취감을 안겨준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해 봅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행복한 시간과 행복자가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욥은 동방의 의인이요,

하나님께서 동방의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분입니다.

욥에게는 원치 아니했던 시험과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험과 고난을 잘 통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욥 42:10-17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라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15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16 그 후에 욥이 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17 욥이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더라


* 욥은 고난과 시험을 잘 통과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참고 인내하여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은 결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인생의 행복자가 된 것입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힘들고, 인내하기 힘들어도

   끝까지 견디어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자가 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 길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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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성공할 때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자 와 실패한 자의 차이는 너무나 크게 느껴집니다.


성공을 하면 마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자의 마음에는 기쁨이 사라지고 맙니다.


권력과 권세가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어리석은 실패자의 삶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돌고, 돌고, 돌아가는 것이 모든 삶의 원리인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삶의 비결입니다.


예전 주말 연속극 중에 기황후 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기황후(奇皇后, 1301년-1315년경)는 원나라 혜종의 황후입니다.


이 연속극에는 대승상 연철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권력과 권세와 모든 황제의 황권까지 소유한 사람으로서

황제를 여러 번 자기의 마음대로 교체하며

황제를 자기의 마음대로 휘여 잡아

30년이라는 세월을 권세를 누리며 살았던 자입니다.


자기가 가진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계획한 것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결국 자기 자식들과 가정과 자신도 죽게 되며

부족이 멸하는 비극의 장면을 맞이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은 세상에서 실패하게 되면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자기의 생각대로만 살아서는 안됩니다.


인생의 성공자로 살아야지

실패자로 삶을 산다면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실패하면

학업생활, 직장생활, 사업에 실패하면, 가정생활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면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합니다.

흔히 실패하면 사람대접을 못 받는 다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을 돌리며 외면합니다.

삶의 실패자는 더 이상 설 땅이 없습니다.

실패한 인생은 참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자가 되고 맙니다.


마11: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자를 찾아오셨습니다.


어떠한 실패한 자라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삶의 용기와 소망을 주십니다.

사람이 실패에 자리에서 성공의 삶을 사는 비결은

주님을 만남으로써 가능합니다.


주님 앞에서 실패한 자는 없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향한 도전자만 있을 뿐입니다.

주님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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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일을 마감하고 나서

그 결과에 대한 성취감을 가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사전에서 성취감이란?

자기가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고 느낌을 말합니다.


그 일을 내 힘으로 다 끝냈을 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성취감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루 동안에 수많은 일을 해결하고,

처리하면서 살지만

그러나 자기가 일을 시작하고 끝을 맺지 못하고

그만 두어야 하고 포기를 해야 할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잘 마치고 나면 마음에 성취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 성취감이 곧 행복감입니다.


그 행복한 성취감을 갖기 까지는

수많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성취감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마음의 쓸쓸함을 가지게 됩니다.


요즈음에 사람들과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면 쉽게 말합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운동은 하세요? 하며 물어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운동을 못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하루를 살면서 해야 중요한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하고 아주 소중한 것이 운동입니다.


운동을 할 때에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운동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요즈음 제가 걸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만보를 걷는 것을 시작해보니 하루에 만보가 작은 걸음도 아니고,

만보를 걷기 위해서는 시간과 더불어

또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다리도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양발에서 발가락이 아파서 피가 나오기도 하고,

날씨가 덥고, 땀도 나고, 춥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며, 때로는 걷기도 싫고, 그래서 포기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하루에 만보를 걸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루의 운동량을 채우기 위해서 여러 번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싸움에서 이기면 성취감을 가지게 되고

행복감을 가지게 됩니다.


마25:20-21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나서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는 순간의 자리에 선다면

영육 간에 최고의 행복한 삶을 살았던 성취감을 소유하는 축복자가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생각하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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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이 그리 쉽고, 만만한 삶이 아닙니다.

매일 새날이 오고 하루를 지내면서 살고 있지만

매일 매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연속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행복한 삶이 되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불행한 삶이되기 때문에 그리 쉬운 삶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중요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하고 꼭 지켜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지켜야 할 일은 바로 자기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첫째로 중요한 일이 하루 밥 3끼 먹는 일입니다.

요즈음과 같이 바쁜 세상에 살다보면

하루 3끼 밥을 제대로 먹고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살다보면

밥을 하루 3끼 먹고 사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때에는 음식이 먹기 싫어서 먹지 못하고 지나가고 맙니다.

시간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밥을 제대로 먹고 사는 것을

하루의 일과 중에서 첫 번째로 소중한 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길 때

하루 3끼 식사를 제대로 먹고 살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몸에 영양소를 제대로 공급함으로 우리의 몸도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때로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먹기 싫어하는 음식과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우리에게 놓여 질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만을 먹다보면 편식하게 됩니다.

편식하다보면 영양분을 우리 몸에 골고루 공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먹기 위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건강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자기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행복한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육만 건강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육신이 먼저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양식도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 줄 때에

영적 성인병에 결리지 않고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 건강을 위해서 밥을 하루에 3끼 먹어야 건강한 것 같이

우리의 영혼의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건강해 집니다.

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늘 찬양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야 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올 여름은 다른 해보다 무척 더운 여름이고 또한 가물어서

잔디밭과 모든 자연에 물이 부족하다보니 말라 죽은 자연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어제 하늘에서 단비가 내려짐으로 땅이 생기가 돋고

잔디와 모든 자연 환경에 생기가 돋는 모습을 볼 때에


아무리 인간이 자기 건강을 위해서 좋은 것 먹고. 즐기며

노력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영육 간에 삶에서 자기와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승리가 될 때에 행복 삶이 됩니다.


영과 육이 건강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먹고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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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면서부터 죄인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라는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늘 부족함과 허전함을 느끼면서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며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면서 자랑하려고 힘씁니다. 그래서


자기를 잘 보이려고 성형 수술도하고, 꾸미기도 하고,

좋은 것을 가지려고 하며, 명품을 가지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 것을 자랑하며 노력해도

결국 참 행복과 만족함을 얻지 못합니다.


인간들은 노아시대의 홍수 심판 이후에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늘 자기만의 바벨탑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육 간에 건강한 사람은 열등의식 속에서 살지 않습니다.


어떤 허세나 자기를 나타내려고 자랑하지 않고

내면의 삶에서 충실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면서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랑거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세상에서 자랑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거리를 만들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랑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하게 됩니다.

교만하다 보면 겸손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겸손이 사라지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인생의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신을 자랑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의 자랑거리를 말을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칭찬하시고 자랑을 해주신다면 가장 큰 축복입니다.


* 자랑이란? 뜻은

일반적으로 자랑은 자기 또는 자기와 관계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어 뽐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자랑의 의미를 나쁜 의미와 좋은 의미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교만이나 건방짐을 동반하는 자랑은 나쁜 의미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나타내는 자랑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이 좋은 의미의 자랑입니다.


고전1: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의롭고,

거룩한 삶이 가능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소망이 없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거리가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만 의지하고, 십자가만 바라본다고 말합니다.

십자가가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면서 사는

우리의 고백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것과 자기 자신만을 자랑하는 삶을 살지 말고

오직 예수 십자가만을 자랑하면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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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랑과 버림을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들은 버림을 당하는 것 보다 사랑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랑을 받기를 원하면서 살지만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버림, 배신, 이별의 슬픔을 당해 불행하며 슬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원하는 사랑을 받으면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원하는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쉬운 삶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대가는 무엇입니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 사랑 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사람의 원하는 삶은

바로 그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 속에서 사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주면서,

참고, 인내하며, 그 사랑을 받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의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결국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버림을 당하면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서 “버리다” 의 단어는 (영) cast way (히) 아잡 (헬) 아피에미

성경에서 “버리다” 라는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형벌로서 하나님이 사람을 외면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버리는 행위에 포기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으며

버리는 것은 배신의 행위를 설명하는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셀 수 없이 하나님을 버리고 또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호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께서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오히려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가 바로

야곱이 환도뼈를 내어드리면서까지 하나님을 붙들었던 것처럼

우리가 더욱 하나님께 매달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로마서를 통해 우리에게 부르짖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바라보며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아


하나님의 관심을 온 몸으로 느끼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뉴욕 한신 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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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벌(매)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상을 받기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죄를 범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벌(매)을 받아야 합니다.

  착하고 잘했을 때 상을 받는 것입니다.


“벌하다”라는 단어는 (한) 벌하다 (영) punishment

                      (히) 파카드 (헬) 에크디케오 란 단어입니다.

  그 뜻을 살펴보면 “지은 죄에 대하여 깨달음을 주기 위해 취해지는 조치”입니다.


  하지만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벌하다”의 의미는

                               죄인에게 그 죄를 깨닫게 하는 의미 뿐만 아니라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름으로 인해 손상된 하나님의 의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해지는 벌은 철저한 보복 법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것이었습니다.


  이 벌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형벌의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법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고


  벌 또한 복수보다는 사회 질서의 유지와 보호의 차원으로 발전했습니다.


  벌은 일반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실수나 법률적 과오에 대해 조치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잘못하고 죄를 지으면 벌(매)을 받는 것이 순리입니다.

  잘못에 대해 벌을 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갈 6:8-1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심은 대로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한 대로 따라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각 사람에게 보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신실하게 행한 사람들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주어집니다.


  강팍하고, 완고함을 좇아

  자기의 고집대로 행한 사람들에게는 저주와 벌(매)이 따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벌(매)를 받지 않으려면 죄와 불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소망의 열매를 맺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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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8월 2일 주일 예배 시간에

태국에서 사역하시는 박영성 선교사님의 사역 지에서

어머니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에

후원하는 선교헌금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에 사랑의 쌀 선교 헌금을 하려고

지갑에서 $ 100 불 짜리 한 장을 꺼내어

헌금 하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 100 불 짜리 돈을 다시 지갑에 넣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 25 불을 지갑에서 꺼내어 사랑의 쌀 나누기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 시간 이후부터 지갑에 $ 100 불은 세이브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생각이 번갈아

후회와 행복이 교차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크레딧 카드 월 페이먼트를 하기 위해서

모 은행에 가서 $ 400 불을 페이먼트를 하였습니다.


크레딧 카드 페이먼트를 한 후 영수증을 받고 나서,

영수증을 확인하지 않은 채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하고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 하루를 지내고

오후 5시경에 영수증을 확인 해보니


분명히 $ 400 불을 은행 직원에게 주고 페이먼트를 했건만

웬일인지 $ 400 불이 아니고 $ 300 불의 영수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 100 불은 없어지고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때 부터 지갑을 확인하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헛수고요, 머리 만 복잡하고,

결국 $ 100 불은 잃어버리고 후회만 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마음에 감동을 주신 대로 순종하며

$ 100 불을 태국 사랑의 쌀 사랑 헌금을 했더라면


하나님께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쌀을 받는

불우한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을 주었을 것을 생각하면서

아까운 마음이 들어 순종하지 못한 삶을

후회하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순간의 아까움 때문에 감동을 주신 것에 대해 순종하지 못한

목회자의 부끄러운 삶을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마음의 다짐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 100 불은 잃어 버렸지만

후회와 깨달음을 얻게 된 행복한 시간이 된 것입니다.


후회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입니다.

뉘우침의 과정까지 가야 제대로 된 후회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잘못 혹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것들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잘못이나 실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회가 동반된 삶이라면

우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던 요나처럼 말입니다.


아쉬움이라는 과거에 머물지 말고

깨닫는 현재와 뉘우치는 미래를 함께 보시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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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로 헌신 한지 15년이 지나고 있다.

13억중의 하나처럼 살기로 결심하고 들어왔으나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이들이 말하길 돈 많은 한국인이 왜 자전거를 타는가?

택시를 타지 하면서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렇듯 나도 미국인은 돈이 많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택시 타고 다니는 미국 선교사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놓고 사는 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 돈이 많은 것이 아니듯,

미국에서 온 선교사도 그렇다는 것을 안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약 2년전 갑작스런 상황으로 이곳을 떠나 태국에서 사역을 하였는데,

고산지대에 사는 화교를 찾아다니며 선교를 할 때이다.

사륜구동 차량이 절대 적으로 필요해 기도하던 중

장목사님의 지원을 받아 차량을 구입하였고 사역의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차량을 받았을 때만 해도

미국교회는 돈이 많아 그 정도는 가볍게 해 줄 수 있는 액수의 돈이라 생각했었다.

그렇치만 그 일이 있은 몇 달 후 장 목사님을 만나 차량 헌금 얘기를 나누던 중,

그 헌금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그리고 가볍게 만들어진 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죽을 팔고, 귀고리와 돌 반지를 팔아, 모아진 눈물어린 돈이며,

김치를 만들어 팔아 푼푼의 돈이 모아져 건네준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 한가지 가슴이 메이는 얘기를 들었다.

선교사를 돕기 위해 잘 아는 집사를 찾아가 부탁을 드렸더니

“고유가 때문에 우리도 살기 힘들어요 ”하면서 50달러만을 내 놓더란다.

적어도 몇 천 달러를 기대하며 어렵게 말을 건넸건만

겨우 50달러를 주면서 거기에 한 마디 덧붙여

우리도 살기 힘들다 하는 그 말에 그만 목사의 얼굴이 화끈 거리고,

자존심까지 상한다,


받을 수도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어 고민하다

안 받으면 시험 들까봐 받아 들고 나오는데 속이 너무도 상해 눈물이 핑 돌더란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하는 대로 하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선교 바자회를 하여 모우고, 헌 옷 수집하여 팔아 모으고,

아픈 다리 끌고 다니면서 광고지를 돌려 모아진 후원금인 것을 내가 왜 몰랐던가?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지금 교회도 어려움 중에서 힘껏 선교헌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끼고 또 아껴서 과부의 엽전 두 냥 같은 그들의 모든 것인 그것을 드리는 것이다.

생명과도 같은 후원금인 것을 결코 잊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선교 후원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회개하며 감사드린다.

지금은 모두가 힘을 모아 구령 사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태국 권 선교사 고백및 감사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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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가을 같다가도,

한 낮이면 무섭게 여름으로 돌아가고,

하루에 한 두번은 변함없이 먹구름이 몰려와 쏘낙비 되어 내리고,

이렇게 우기를 보내다 보니,, 곧 두 달이 되어갑니다.


그간 안녕 하신지요?

사모님과 자녀분들 그리고 교회의 많은 성도님들..도

지난번 힘에 겹도록

정성껏 모아 보내주신 차량 헌금 잘 받았습니다.

바로 구입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서류가 도착하지 않아

어제 오후에서야 차를 가져 왔는데,

7년 된 포드차로, 상태는 양호하고, 뒤 트렁크에 켑을 씌우고

의자를 만들면 10명 정도는 거뜬히 탈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부터 고산 지대로 다니는데,

어제까진 렌트해서 다녔는데,


다음부터는 저희 차로 다닐 수 있겠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8년 8월 22일

권진안 선교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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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추망마이 지역에서 선교 사역하시는 권진안 선교사님께서

2008년 7월 27일 선교 소식이 왔습니다.


선교사님의 간절한 사역에 불타는 열정에 감사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추앙마이 지역에 중국화교가 7백만 명이 살고, 라오스에 6백만 명이 살고

미얀마에 9백만 명이 살고 있어서

중국어 사역하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사역 소식이었습니다.


이 중국 화교들이 대부분 고산족 마을(중국인이 살고 있는 산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면서

산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역가운데 이곳에 차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원요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꾼에게 공구가 필요하고 좋은 공구를 가진 일꾼은 그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구가 없으면 일한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적다는

선교사님의 간절한 선교사역을 위한 요청에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교 사역을 위한 선교 후원 헌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어느 여 집사님을 만나서 선교에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그 여 집사님이 말하기를

 “목사님 요즘 태국 선교사도 어렵겠지만

   고유가 시대에 살고 있는

   미국에 있는 교민들도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교인들도 힘듭니다".


선교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가운데 사는 것도 힘든데, 선교 지원하는 일로

목사님께서 교인들에게 힘들게 하고

부담을 많이 주고 있어요” 라는 말을 듣고 나니


왜 이 여 집사님을 만나기위해서 이곳에 왔던가? 하면서

후회를 하는 순간에 저의 눈에 눈물이 핑 돌고, 제 얼굴은 열이 올라가고,

마음은 자신이 처량해지면서

왜 내가 선교사 후원 문제로 이러한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하며 쓸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 여 집사님은 저에게 $ 50 을 주는 데 이것을 받아야 하는 가

받지 말아야 하는가 하며 순간 망설이는 시간이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주는 $ 50 의 선교 헌금을 가지고 나오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일하는 것 힘들다고 느끼며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마음을 아셨는지!

저의 눈물을 보셨는지 하나님은 저에게 새로운 힘을 주셨습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선교에 사용하시라고 $ 2,000,

또 어떤 성도님이 $ 1,100, 그리고 $ 1,000, 또 $ 500, $ 100, $ 50 하면서

태국 선교사님 차량 선교 헌금과 부족 금을 차용하여 태국 선교지에 송금을 하고 나서

선교사님께 $ 12,000 을 보내었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 선교사님은 너무 좋아서 밤에 잠을 자다가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기쁨으로 찬송하고 또 감사하며 날이 새기까지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종의 눈물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의 마음을 보시고, 눈물을 보시고, 선교의 열매를 거두시기 위해서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보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에 감동을 받은 자는 큰 축복을 받게 되며,

감동에 순종하는 자에게 큰 복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됩니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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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사람입니다. 그리고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주 강하고, 영원한 존재로 바뀌는 것은

사람들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며 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갑니다.


저도 모태 신앙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린 시절을 지내고 3사관학교를 거처서 육군 대위로 전역하였습니다. 그리고


1976년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고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사역이 시작 하였습니다.

1986년 미국에서 이민의 삶을 시작하면서 한신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 후


1994년 우리 교회가 브롱스 지역에서 사역을 할 때 일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정지 상태가 되었고

목회자인 제 자신은 탈진 상태에 있을 때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목회자의 탈진 상태에서 회복하기 위하여

북 침례교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 공부를 하게 되었고

영육 간에 재충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저를 선교의 마음과 비전을 심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저의 마음에 선교하라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 자신과 교회 형편 및 재정 상태를 점검해 보니

선교는 저와 우리 교회 재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우리 교회 재정 상태는 1년을 결산하고 나면

매년 계속해서 3년째 -$ 5,000. 마이너스(적자)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두 번째 계속해서 선교의 마음을 주시며

선교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의 마음과 선교를 하라고 하시려면

교회 재정을 -$ 5000 교회로 만들지나 마시지,

마이너스 (적자) 교회로 만들어 주시고 선교하라고 하십니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계속 못한다고 기도했습니다.


또 세 번째 하나님은 또 선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못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교를 한 번도 해보지도 못하고 마이너스 (적자) 교회였는데

한 번 하나님이 하라는 선교를 해보고 나서

적자인지 흑자이지 시험해보자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1차 단기 선교지역을 아프리카 케냐 박흥순 선교사님

사역지로 단기 선교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 함께 1년 동안 기도하면서 선교 헌금을 준비했습니다.

선교를 출발하기 1주일 전까지 준비된 선교 헌금이 $ 1,485 뿐이었습니다.

이 선교헌금으로는 단기 선교 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1년 전 부터 선교하라고 하시면서,

선교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주시지 않으면서

왜 선교의 마음을 주시고, 준비하게 하셨습니까?

원망과 불평의 기도를 하나님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교는 가지 않기로 마음의 결정을 혼자서 하였습니다.


저는 실망과 낙심 가운데 퀸즈 지역에 있는 남편이 계시지 않고

자녀들과 함께 지내시는 여자 성도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목사님 잘 오셨습니다.

선교 준비는 잘되어 갑니까? 하시면서

방으로 들어가면서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한 참 후에 델리 가게에서 사용하는 노란색 봉투에 묵직하게 보이는

봉투 하나를 들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이것 가지고 선교를 잘 다녀오세요.” 하면서

저에게 주고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여자 성도님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선교를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서

선교 헌금은 주지 않고 왜 노란 델리 가계에서 빵을 싸주는 봉투를 주면서

선교를 잘 갖다오라고 하는 말을 하는 자체가 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이것이 참으로 무엇인지 궁금하였지만

무엇인가 물어 보지 않고 집에서 와서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이것이 웬일인가요?

사랑하는 딸이 용돈을 준 것을 쓰지 않고

선교를 위해서 모아 놓았던 ($ 1, $ 5, $ 10, $ 20 등등) $ 5,000불의

노랜 봉투 뭉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면서 원망과 불평의 기도를 하였던 지난 시간을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주일 예배를 아프리카 케냐 단기 선교 주일로 드리면서

이러한 상황을 교인들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가 선교를 준비 한 것이 1년 동안에 $ 1,480 불인데

나이가 드시고, 혼자서 자녀들과 함께 힘들게 생활하시는

여자 성도님께서 $ 5,000 을 준비해서 선교 헌금을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면서

그 날 선교 헌금 한 것이 단기 선교를 2번 다녀올 수 있는

선교 헌금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단기 선교를 마치고 나서

그 해에 교회 결산을 해보니 전년도까지만 해도 - $ 5,000 였던 적자 교회를

흑자 교회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년도에 $ 8,000 과 그 다음 년도 결산에 $ 12,000,

그 다음해 $ 18,000 로 흑자 교회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교회당을 마련하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신 교회와 저도 선교하는 교회와 목사가 되는 축복자가 된 것입니다.


교회 일이나, 선교, 주의 일을 할 때에 “돈이 없어서 못합니다.”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께 옥합을 깨어 드린 여인처럼 주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어 드립시다.

이 믿음의 여자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옥합을 깨어 드린 사건이

우리 교회가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약하고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가 사람이지만

주님을 위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면

영원히 기억하고, 강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사역들이 저의 목회 탈진에서 회복의 은혜를 입게 해주었습니다.


믿음의 여인이 하나님의 사역에 찍어놓은 발자국처럼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찍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뉴욕한신교회

 장길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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