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자에게 베푼 사랑은 많은 것을 투자하며 사랑한 것입니다.
1) 그 당시 1 데나리온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2) 당시 주막에 숙박비가 1데나리온 하루 품삯 1/32 이라고합니다.
3 ) 2 데나리온 2 달치 여관비 준 것임.
3) 자비를 베푼 것은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4)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며 강도 만 난자를 도와 주었습니다.
*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가?
1)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2) 그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나 사람을 말합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 : 강도 만난 자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가까이에서 사랑하며 도와 준 사람이 강도 만 난자의 이웃입니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1)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종교적 민족적 선입관을 버리고 도와주라는 뜻입니다.
2) 종교적 민족적 자기 중심의 선입관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3) 누가 나의 이웃인가를 따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4) 내가 불행한 자의 이웃이 되어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강도 만난 사람에게 행한 3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1) 제사장입니다.
제사장(Cohen)이란, 전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제사)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성막 또는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통하여 하나님께 죄 사함을 위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2) 레위인 입니다.
레위인은 야곱의 셋째 아들 레위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특별히 선택되어 성막(성전)의 관리,
제사 보조, 찬양, 율법 교육 등 종교적 봉사와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지파이며,
다른 지파와 달리 땅 분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 십일조를 수입으로 받았습니다.
3) 사마리아(이방인)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원래 고대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민족을 말합니다.
유대인과 이민족이 혼합된 집단으로 서로 배척받았지만,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한 사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널리 알려지게 되습니다.
이는 종교, 민족적 편견을 넘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참 이웃'을 의미하며,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같이 현대 사회에서도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를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1.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눅10:31-32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본문에서 강도를 만나 사람이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아니 피하여 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며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강도를 만나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동족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서 그냥 도망쳐 갖다 는 이야기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오늘날에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자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동정심과 올바른 윤리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마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눅 10:33-35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불쌍한 자의 이웃입니다.
2.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돌보아 주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1)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2) 그를 불쌍히 여겨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3)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4) 주막 주인에게 잘 치료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5) 돈이 더 들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으로 취급하며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 원수같이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을 정성껏 보살펴 주었습니다.
약5: 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눅 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 강도 만난 자에게 도와주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를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 말씀은 불쌍하고 헐벗고 굶주림을 보거든 도와주라는 의미보다 더 큰 뜻이 있습니다.
곧 보거든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향해 솔선수범하여 찾아 나서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보살핌이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우리의 구제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웃 사람은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입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우리는 말로나 혀로 고통 중에 신음하는 자를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불쌍한 일 당한 자를 얼마나 도와주고 사랑했습니까?
주님의 교훈대로 불쌍한 이웃을 향하여 찾아 나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불행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그리스도인 사명입니다.
불행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