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지만 오직 순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성도들의 삶도 우리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국 선교 초창기에 침례교 선교사님으로 우리나라에 오신 말콤 C. 펜윅 선교사님의 일화입니다.
펜윅 선교사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무를 하나씩 주면서 무 잎은 땅속으로, 무는 하늘로 올라가도록 심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아마 선교사님이 서양에서 무를 심어 보지 못했나 봐, 아마 무가 열매인 줄로 잘못 아신 모양이지?” 하며
제자들 전부 무를 땅속으로, 무 잎사귀는 하늘로 가게 심었습니다.
제자들이 정상적으로 심은 거지요. 그런데 유독 한 사람 만 무를 하늘로 무 잎사귀는 땅속으로 심은 것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이 사람을 보고 “아니, 선교사님이 모르셔서 그렇게 시킨 건데 무식하게 무를 그렇게 심으면 어떡하나?”하고
아마 흉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펜윅 선교사님이 돌아오셔서 자기의 말대로 무를 거꾸로 심은 제자만을 칭찬하였습니다.
“내가 무 심는 법을 몰라서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순종하는지,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고 싶어서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라고 말콤 C. 펜윅 선교사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하신 삶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권위에 순종하신 삶을 사셨습니다.
눅 2: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눅2:51절에 예수님 생애 가운데 순종이라는 말은 처음 나온 말씀이다.
여기에서 ‘순종하여’라는 단어는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계속 적인 순종의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늘 삶의 몸에 밴 습관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육을 입고 이 땅에 있는 동안 눈에 보이신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뿐 아니라 교회와 세상의 모든 권위도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자녀들을 희생적으로 양육하고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인이 되어 부모의 곁을 떠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부모의 권위에 순복하신 삶을 사셨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의 권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민 12 : 9-10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모세가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에게 문둥병의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가정에서는 모세가 아론과 미리암의 권위를 따라야 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는 모세가 권위자였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모의 곁을 떠날 때까지는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2. 내려놓음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자기를 비우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 종의 중요한 2가지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1) 종은 자기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2) 종은 자기의 일도 없어야 합니다.
종의 삶은 주인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삼고 주인이 맡기신 일을 자신의 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종의 형체로 오셔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을 취하셨다면,
우리도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하나님의 일을 내 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생각과 내 경험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베드로의 삶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눅5:4-8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자기의 어부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은 축복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죄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소명까지 받게 됩니다.
베드로는 어부에서 예수님의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자신의 경험과 계획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그 축복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내려놓음의 자기 부인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경험과 계획, 그리고 자존심까지도 다 내려놓고 철저하게 종의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계획과 생각을 붙잡고 있는 한 자기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결과를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앞에 있는 기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을 바라보셨습니다.
십자가 넘어 승리의 부활을 보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순종으로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바로 순종에는 놀라운 축복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상 17:14-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이것을 사르밧 과부의 순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열상17:19-24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 중에 사르밧 과부에게 보낸 것은 과부의 순종을 통해 그 집을 축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에는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에는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죽는 불행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순종이 주는 축복입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명하실 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 수는 있지만 홍수는 하나님이 일으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 수 있지만, 그 여리고 성은 하나님이 무너뜨리셨습니다.
빈들에서 많은 사람들을 50명씩 앉힐 수 있지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할 때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의 역사하심을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