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자기의 힘으로 혼자 일어나 설 수 가 없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 일어 설수 없는 사람보다 더 안타까운 사람은 영적인 장애자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영적인 장애자가 아닌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손이 있어도 남에게 구제할 줄 모르는 사람의 손이 아닌지요?
발이 있으면서도 기도하려 교회에 나오지 못한 자가 아닌지요?
예배를 드리지 못한 자가 아닌지요?
머리가 있으면서도 깊이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지요?
입이 있으면서도 전도하지 못하고, 찬양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한 성도가 아닙니까?
이런 장애자가 된 우리를 향해 주님은 이 시간 일어나 걸어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 우리 자신을 진단해 보면서 앉은뱅이 신자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일어나 걸어가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발로 걸으면서,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성전 미문에 않아 있는 거지 앉은뱅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성전에 들어가는 미문은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 있는 아름다운 미문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거지는 아름다운 미문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너무나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일어나 설 수 가없는 사람입니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설수 있는 사람이며,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앉은뱅이 거지는 장애자입니다.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그는 거지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을 해야 하는 가난한 앉은뱅이였습니다.
또 그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는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외적으로는 화려하게 보이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비참한 앉은뱅이 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행복하게 보이는데 내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해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인간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아무리 문화가 발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잘 먹어도 내적으로는 불행하면 비참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이런 비참한 모습을 먼저 점검해 보고 발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겉모습만 보면서 안에 있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은 보지 못한다면 영원히 해결할 수가 없는 비극입니다.
영 육간에 앉은뱅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합니다.
2. 성전 미문에 거지 앉은뱅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행3:3절에 보니까 구걸하거늘 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거지가 먹을 것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온전한 몸, 즉 자활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는 우선 먹는 문제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는 문제 때문에 꿈과 이상을 상실한 현대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닙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만 서서 다닐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까?
그 이유는 위를 보고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중요한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지느냐 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다른 것은 자연히 해결됩니다.
즉 종적인 관계가 회복되면 횡적인 관계는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3. 앉은뱅이에게 이적을 베풀게 된 두 사도 능력이 무엇인가?
두 사도는 먼저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아침 9시, 낮 12시, 오후 3시) 기도 시간을 가집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당시의 관습에 따라 성전을 향하여 갔다는 것은
바로 베드로와 요한의 신앙심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적과 이적은 경건의 힘없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1)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았다고 했습니다.
행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교회가 가난한 사람, 불구자, 고아와 과부들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권력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 지식 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힘 있는 자들에게 아부하고, 그들에게 따라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가난한 자와, 장애자, 고아와 과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려야 합니다.
교회가 이런 불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버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손에서 떠났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흔히 바쁘다는 핑계로 발뺌을 하기가 일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빠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못 본체하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해결할 힘은 없어도 볼 수는 있습니다.
관심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지 못하면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존재와 같습니다.
성도의 생명은 영적 감각이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불쌍한 사람에게 관심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을 주었습니다.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1)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가 남을 구제할 만한 충분한 돈은 없습니다.
병자들을 고칠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세상의 그 어느 것 보다도 귀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만 하면 됩니다.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면 됩니다. 그러면 발과 발목이 힘을 얻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예수님 당시에만 있다고 생각지 마세요.
지금도 믿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기적이 필요할 때는 언제고 일어납니다.
병으로 환난을 당하는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합시다.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일어납시다.
믿고 기도하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거지 앉은뱅이가 어떻게 고침을 받고 나서 삶에 변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행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1) 무엇보다도 앉은뱅이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3: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갈 한자에게 물을 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 믿음입니다.
행3:7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킬 때에 그가 거기에 응한 것을 보면
앉은뱅이는 분명히 믿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행14: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 앉은뱅이는 고침을 받을만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러면 앉은뱅이 거지는 고침을 받고 변화된 삶이 무엇인가?
1) 그는 뛰어 서서 걸었다고 말합니다.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고 나서 너무 기뻐서 어른이라는 체면도 버리고 뛴 것입니다.
그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받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행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행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오늘 우리는 일어나 걸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일어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에게만 의존하는 데서 일어나야 합니다.
남에게 줄줄 모르는 손에서 구제하는 손으로 고쳐져야 합니다.
앉은뱅이의 신앙에서 일어나, 뛰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거하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